
22일(현지시간) 개막한 영국 대표적인 정원·원예 박람회 '첼시 플라워쇼'에 한국의 황지해 작가가 정원 '백만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A Letter from a Million Years Past)를 출품했다.
'백만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의 모티브는 지리산 동남쪽 약초군락이다. 약초와 원시적 형태의 자연 풍경을 통해 환경을 지키자는 메시지를 가진다. 지리산에만 있는 지리바꽃, 멸종위기종인 나도승마, 산삼, 더덕 등 토종 식물 등 식물 300여종과 총 200t 무게의 바위들로 가로 10m, 세로 20m 크기 땅에 지리산의 야성적인 모습을 재현했다. 바위 사이엔 지리산 젖줄을 표현한 작은 개울이 흐른다. 중심엔 지리산 약초 건조장을 참고해 만든 5m 높이 탑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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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는 '첼시 플라워쇼'의 얼굴이자 주요 경쟁 부문인 쇼 가든에서 12개 출전작 중 유일한 해외파 작품이다.

찰스 3세는 정원을 둘러보고는 '정말 맘에 든다' (I love it), '훌륭하다' (brilliant), '경탄할만하다'(marvellous)" 라는 등 찬사를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적극적 관심에 감동한 작가가 마지막에 "안아봐도 되냐"고 물어보자 찰스 3세는 "물론이다"라고 답하고 웃으며 포옹해주기도 했다. 이처럼 영국에서 국왕 등 왕실 인사들이 일반 대중과 악수 이상 접촉을 하는 일은 흔치 않다. 현장에 있던 BBC 취재진은 황 작가에게 "국왕이 정원 안으로 들어가다니 당신에게 특별한 날"이라며 "포옹을 한 상황도 사랑스러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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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엔 유명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거의 1시간 둘러보고는 "완전히 자연적이고, 멋진 돌들이 있고 희귀 식물이 있다"며 "정말 특별하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황 작가는 "20억년 넘는 시간을 상징하는 바위의 밑에서 자라는 작은 식물들이 백만년 전에서 온 편지처럼 보일 것"이라면서 "지리산 약용식물의 가치와 이들을 키워낸 독특한 환경을 보여주면서 자연과 인간의 공생, 다음 세대를 위한 행동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쇼 가든 경쟁자는 금상을 14번 받은 크리스 비어드쇼, '첼시 쇼'의 왕으로 불리는 마크 그레고리, 런던올림픽 공원을 설계한 새러 프라이스 등이다. 결과는 23일 오전에 발표되고 폐막은 2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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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플라워쇼'는 영국 왕립원예협회(RHS) 주최로 1913년 시작됐다. 런던 남서부 부촌 첼시 지역에 템스강과 접한 4만5000㎡ 규모 부지에서 열린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매년 방문하는 등 왕실과의 관계도 깊다. 하루 입장권 가격이 회원 기준 약 58파운드(약 9만5000원)에 달하지만, 총 약 16만8000명이 방문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행사로 꼽힌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