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올해는 정말 어려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30년 내내 반복적으로 듣는 대표이사들의 신년사 레퍼토리다. 겁 팍팍 줘서 허리띠 더 졸라매고 더 분골쇄신하라는 이야기겠지만 허구한 날 반복되다 보니 마약도 아닌데 중독이 될 판이다. 그새 1인당 소득이 8000달러에서 3만5000달러까지 증가한 걸 보면 그 전망, 틀린 게 아니라 상투적 거짓말인 것 같다. “정말 힘들 것”이라는 경영자의 예측이 ‘빨리 죽고 싶은 노인’, ‘시집 안 가고 싶은 노처녀’, ‘밑지고 파는 장사꾼’을 누르고 ‘상투적 거짓말’ 1위에 등극할 판이다.

[비즈니스 인사이트] 두려움의 리더십, 이제 그만 벗어나자
리더십은 ‘구성원들이 조직의 목표에 몰입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이라는데 두려움으로 몰입을 유도하는 방법이 가장 쉬웠던 것이고, 나름 유용했지만 유통기한은 끝난 것 같다. 맹수의 위협 아래 수렵 생활을 해 온 인류는 두려움에 본능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 뒤로도 사탄이, 야만인이, 공산주의와 북한이, 제국주의가, 난민들이, 테러리스트가, 기후변화가 우리의 평안함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프로파간다’가 먹혔던 걸 보면 맞는 것 같다. 게다가 두려움은 전파 속도가 기가 막힌다. 뉴욕타임스가 조사해 보니 불안을 유발하는 기사는 21%, 놀라운 기사는 30%나 지인에게 더 많이 이메일로 공유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거기에 놀랍기도 하고 불안하기까지 하면? 산술적으로 57% 더 많이 전송될 수 있다. 두려움은 확실히 ‘약발’이 빠른 데다 결정적으로 정말 쉽다. 전문가들이 내놓은 레토릭과 숫자를 그대로 인용하면 되니까. 나중에 틀려도 그 전문가 탓을 하면 된다.

반면에 매력적인 비전을 구상하고, 그 꿈에 도달하는 슬기로운 전략으로 이끄는 건 어렵다. 우리에게 최적화된 걸 새롭게 만들어야 하니까 그렇다. 그래서 회사 망할 위기가 다가왔으니 노조는 입 다물고 직원들은 분발해 성과를 내라는 요구를 반복해온 것이다. 손쉽게 말이다. 그런데 두려움의 리더십은 여기에 뼈를 묻겠다는 결연한 각오를 하고 회사의 발전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는 직원들에게나 통한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 진작에 멸종했다. 반면 개인의 성장을 중요시하며 이직을 불사하는 친구들에게는 생각 외의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블라인드는 5년차 이하 직원의 55%가 지난 1년 사이 이직을 시도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상시 이직 준비 태세’인 것 같다. 보스가 미래가 암울하다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면서 허리띠 졸라매자고 겁주는데 저쪽 보스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끝내주는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큰소리를 친다? 이게 반복되면 이직 생각 안 나는 게 이상하다. 우리 직원들 바보가 아니다. 요즘처럼 이직이 쉬운 판에 선장이 침몰을 걱정하는 배에서 인생을 걸고 싶을까? 퇴사율은 올라가는데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 같은 스타트업이 블랙홀처럼 인재를 쓸어 담으니까 ‘앗 뜨거워라’ 싶어 유연근무제와 원격근무제, 복장 자율화와 낯선 수평적 문화를 만든다고 다들 수고는 했지만, 이직의 바람은 잠잠해지지 않는다. 본질에서 벗어난 중체서용(中體西用)의 현대판이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스타트업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들이 꿈꾸는 아름다운 미래상을 내세워 성장을 중시하는 젊은이들의 관심을 끈다.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는 아름다운 리더가 아니다. 분노조절장애에 가까운 행동에 성격이 진짜 유별나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다들 거기서 일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앓는 소리 절대 안 했다. 매년 새로운 버전의 큰소리를 친다. 우주에 흔적을 남기자, 화성에 사람을 보내자는 턱도 없는 소리다. 그리고 그냥 월급쟁이가 아니라 끝내주는 비전을 위해 일하고 싶은 천재들이 거기로 가서 영혼을 갈아 넣는다. 그러다 보니 턱도 없던 그 생각이 자꾸만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러니 대기업이 그들을 이길 수 있겠나. 사실 스타트업 창업자가 앞으로 힘들 것이라는 말을 달고 살면 누가 투자할 것이며, 누가 입사를 하겠냐마는.

두려움이 아니라 자연스레 외투를 벗게 만드는 5월의 햇살처럼 따뜻한 몰입을 불러오는 그런 리더십이 고프다. 5월에 웬 신년사 타령이냐고? 눈 내릴 때 부랴부랴 준비하지 말고, 지금부터 어떤 희망으로 직원들을 이끌지 고민을 시작하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