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L 지상 헬기' 고성능진화차 성능입증…산림청, 2027년까지 100대 도입
'진화차 도착 전 불 끈다' 마을마다 비상소화장치 설치해 초기 산불 대응
전문가 "지상 진화 역량 강화만큼이나 사전 예방·주민 대피 시스템 중요"

강릉 산불은 강풍에 8천L(리터)급 초대형 헬기조차 뜨지 못하는 도시형 산불의 진화와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과제를 던져줬다.

봄철 태풍급 강풍인 '양간지풍' (襄杆之風) 또는 '양강지풍'(襄江之風)은 초기 진화의 핵심인 공중 진화 체계를 완전히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동시에 공중 진화 전력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는 '도시형 산불' 진화 체계 대안 없이 공중 진화에만 의존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점도 그대로 보여줬다.

강풍에 헬기의 발이 묶여 속수무책인 사이 '비화'(飛火)한 불씨는 펜션 등 건물 101채를 순식간에 집어삼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산불 당일 오후에 쏟아진 소나기가 아니었다면 강릉 산불 피해 규모는 훨씬 컸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헬기 못 뜨는 양간지풍엔 '지상형 헬기' 고성능진화차가 대안
강릉 산불을 계기로 3천L급 고성능 산불 진화 차량은 진화 헬기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도심형 산불 진화의 핵심 장비로 떠올랐다.

지난 달 11일 강릉 산불 현장을 지킨 한 산림 당국 관계자는 "초속 20∼30m의 강풍에 비화한 불씨가 수 ㎞를 날아 펜션과 주택 이곳저곳에 옮아 붙어 도심이 온통 검은 연기에 휩싸였을 때 어디서부터 불을 꺼야 할지 막막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산불 현장에는 한때 8천L급 초대형 진화 헬기 2대가 이륙했으나 곧바로 철수했다.

산불 진화 헬기의 발이 묶인 것은 '이륙 시 풍속 제한' 때문이다.

초속 20m 이상의 강풍이 불 때는 안전을 고려해 헬기가 이륙할 수 없다.

이륙을 시도했던 헬기가 공중에서 느낀 순간풍속은 초속 60m에 달할 정도로 바람은 강했다.

초대형 헬기조차도 계류장에서 이륙과 착륙을 반복하면서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강풍이라는 악재 속에 헬기를 대신해 활약을 펼친 것은 담수 용량 3천L의 고성능 진화차다.

강원도유형문화재인 경포대는 물론 국가민속문화재인 강릉 선교장과 보물 오죽한 등 문화재 방화선 구축과 주변 산불 진화에 일익을 담당했다.

25㎜ 방수포에서 고압으로 뿜어내는 물줄기는 최대 2㎞ 떨어진 불씨를 껐고, 임도가 없는 급경사지도 거침없이 올라 화마(火魔)를 제압했다.

담수 용량은 기존 진화 차량(1천L)의 3.5 배이고, 최대 4배 이상인 1분당 130L의 물을 뿌려 산불 초기 진압에 효과적이라는 평가다.

산림청 소속 고성능 진화차는 지난 3월 경남 합천 산불을 시작으로 지난 4월 강원 고성 산불까지 모두 12차례의 대형 산불 현장에 투입돼 성능을 입증했다.

지난 3월 11일 경북 상주 산불 때는 일몰로 헬기가 철수하고 난 후 야간에 투입돼 야간 진화율을 30%에서 80%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어 지난달 4일 충남 홍성 산불 당시에는 가파른 급경사지를 올라 천년 고찰인 보물 제399호 고산사를 산불로부터 막아내는 데 큰 몫을 했다.

고성능 진화차 1대당 공중진화대원과 특수진화대원 등 10명이 함께 진화에 나서 독일 전차를 연상케 할 만큼 진화 전력은 막강해진다.

산림청은 올 연말까지 기존 3대를 포함해 15대를 추가 도입, 총 18대를 확보할 계획이다.

강원도에는 이 중 10대를 배치한다.

여기다 2027년까지 82대를 추가 확보해 총 100대 배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1대당 도입 가격은 7억5천만원이다.

이를 통해 산불 골든타임(30분) 내에 고성능 진화차가 투입할 수 있도록 산림 25㎞당 최소 1대를 배치할 계획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담수 용량이 3천L에 달하고 고압 살수가 가능해 '지상형 헬기'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인명·재산, 문화재 보호 및 임도를 이용한 주불 진화 등 산악지형에 특화한 고성능 진화차 도입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진화차 도착 전 초기 산불 대응에 '비상소화장치' 필수
동해안 지역 해안 도시에 맞는 도시형 산불 진화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은 2019년 4월 강원 고성과 옥계 산불 때도 나왔다.

이번 강릉 산불은 강풍으로 헬기가 뜨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더해졌다.

헬기가 떴다고 해도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제1경인 경포대를 포함해 주변에 고택 등 문화재가 산재하고 도심과 가까운 골짜기마다 펜션이 즐비해 공중 진화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도시형 산불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진화차 확충과 함께 마을 비상소화장치도 대안으로 떠오른다.

비상소화장치는 산불취약지역에 설치해 소방차 도착 전 주민이 민가를 보호할 수 있도록 소화전과 호스릴, 관창 등을 연결한 소화장치다.

옥외소화전과 같은 역할을 한다.

비상소화장치는 호스의 길이가 길고 높은 압력으로 물이 세차게 나와 헬기가 뜨지 않는 초기 상황에 집 주변이나 산림에 물을 뿌리면 효과를 거둔다.

강릉 산불 때 경포대의 경우 주변에 설치된 50m 길이 호스를 갖춘 옥외소화전 5개로 살수 작업 등을 벌여 화마를 피했고, 같은 도유형문화재인 방해정 역시 옥외소화전이 있어 일부 소실에 그쳤다.

이에 강원도와 도 소방본부, 일선 시군에서도 예산을 들여 비상소화장치를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강원소방은 산불취약지역에 설치할 비상소화장치를 동해안에만 1천216개를 설치한 데 이어 올해는 영서지역까지 설치 범위를 넓혀 592개를 추가 설치한다.

도시형 산불 진화에 대비한 지상 진화 체계와 대응력 강화에는 강원소방이 적극적이다.

산불업무는 본래 산림청 소관이지만 일반 건축물 방어와 추가 피해확산 방지를 위해서라도 소방 차원의 대응력 강화는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력으로 대응할 수 있음에도 진화 헬기만을 기다리는 의존적인 자세나 건축물 방어 위주의 소극적인 자세는 되레 피해를 키운다는 판단에서다.

이일 도소방본부장은 "산불은 작은 불티 하나로 시작된다.

대형산불이 잦다는 말은 초기대응에 실패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며 "초전박살(初戰搏殺). 그야말로 초전에 박살 내는 대응 전략으로 대형산불의 악순환을 끊겠다"고 말했다.

특수한 기상 여건에서 발생하는 동해안 산불의 진화 체계 수립만큼이나 예방과 대피 시스템 역시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시영 강원대 방재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10일 "강릉 산불과 같은 강풍에서는 진화 효율이나 진화 역량이 무색하기 때문에 실화를 사전에 차단하고 전선 단락과 같은 원인 분석을 통해 치밀한 예방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기상 여건에 큰 영향을 받는 동해안 산불은 불 끄는 역량 강화는 물론 인명피해가 없도록 신속한 주민 대피 시스템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