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잦은 해역 침범에 미국과 동맹 강화…"강경 대응이 '전략적 유리' 판단"
[특파원 시선] 중국 영토주권 침해에 '친미'로 기우는 마르코스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에서 선친이 독재자로 낙인이 찍힌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취임 후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과의 군사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마르코스가 지난해 6월 30일 대통령에 취임할 당시만 해도 전임인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재임 기간에 견지한 '친중' 기조를 이어갈 거라는 예상에 무게가 실렸다.

두테르테는 2016년 취임한 뒤 수시로 동맹인 미국의 외교 정책을 비판하는 한편 중국에 대해서는 친화적인 입장을 보였다.

중국 선박 수백척이 남중국해의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휫선(Whitsun) 암초에 장기간 정박하는 와중에도 중국을 상대로 강경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특히 2020년 2월에는 미군이 필리핀에서 군사 훈련을 벌일 수 있는 근거인 방문군 협정(VFA) 종료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가 이듬해 7월에 이를 철회하기도 했다.

후임인 마르코스는 작년 5월 대선에서 두테르테의 정치적 지지 기반을 상당 부분 흡수하면서 당선됐다.

그는 당시 여론조사에서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두테르테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와 '러닝 메이트'를 이뤘다.

자신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고 대신 사라는 부통령 선거에 출마한 것이다.

결국 마르코스는 두테르테 가문과 제휴해 경쟁자인 레니 로브레도를 압도적인 표 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따라서 마르코스가 전임 대통령의 친중 외교 정책을 상당 부분 이어갈 공산이 클 것으로 전망됐다.

아울러 대선 당시 마르코스를 적극적으로 도운 세력에 중국과 밀접한 관계인 정·재계 유력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어 친중 기조는 불가피할 거라는 관측에 한층 힘이 실렸다.

마르코스 본인도 대통령 취임 전에는 개인적으로 미국과 불편한 관계였다.

미국 등 서방세계는 그의 선친인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전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독재자로 간주해 왔다.

마르코스 대통령 본인도 1995년 하와이 지방법원이 자신의 일가에 대해 부정 축재한 20억 달러(약 2조6천500억원)를 선친의 독재 치하에서 고통받은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라고 명령하자 이를 거부했다가 법정모독죄까지 추가된 바 있다.

하지만 마르코스는 이 같은 예상과 달리 취임 이후 미국과의 군사 동맹을 파격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중국 함정이 수시로 자국 해역을 침범하는 상황에서 영토 주권 수호를 위해서는 동맹인 미국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U자 형태로 9개 선(구단선)을 긋고 선 안쪽 90%가 자국 영해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2016년 국제상설재판소(PCA)는 중국의 주장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런데도 중국은 이를 무시하고 같은 입장을 고수해 필리핀을 비롯한 인근 국가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마르코스는 올해 1월 시진핑 국가주석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해 남중국해 갈등 해소·양국 관계 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방중 후 불과 한 달 만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세력 확대를 견제 중인 미국이 필리핀 군 기지 4곳을 추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어 지난 1일에는 미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 군사적 동맹 관계를 재확인했다.

이와 관련, 한 외교 소식통은 "마르코스 입장에서는 주변에 친중 세력이 다수 포진하고 있더라도 영토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전했다.

그는 또 "중국에 저자세로 대응하기보다는 미국과 손을 잡고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게 전략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