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슈퍼 컬렉터' 울리 지그가 찜한 중국 현대미술 엿보기
세계 최대 아트페어(미술품 장터)인 스위스 아트바젤. 매년 이곳을 찾는 VIP들이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짬을 내 방문하는 곳이 있다. 바로 '슈퍼 컬렉터' 울리 지그(77)의 저택이다.

사업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지그가 중국에서 20여 년간 머무르며 모아온 현대미술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다. 그의 컬렉션 규모는 웬만한 미술관 못지않다. 실제로 그는 2012년 홍콩 M+뮤지엄에 자신의 소장품 1463점을 기증했다. 개인 미술품 기증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지그의 컬렉션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청담동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다. '울리 지그 중국현대미술 컬렉션 전'이다. 지그의 컬렉션이 국내에 소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스위스나 홍콩에 가지 않고도 아이 웨이웨이, 쩡판즈 등 유명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 나온 회화, 조각, 설치작품 등 48점 가운데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건 송은 지하 2층에 있는 조형물이다. 전시장 가운데에 남색 수트 차림의 남자가 시체처럼 엎드린 채 쓰러져있는 작품이다.
세계적 '슈퍼 컬렉터' 울리 지그가 찜한 중국 현대미술 엿보기
사람인지 모형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실적인 이 작품은 허샹위가 만든 '마라의 죽음'(Death of Marat·2011)이다. 중국의 대표적 반체제 예술가인 아이 웨이웨이가 쓰러진 모습을 통해 중국 정부의 억압을 비판했다.

아이 웨이웨이를 모델로 한 마라의 죽음은 1층에 있는 아이 웨이웨이 본인이 만든 설치작품과 이어진다. 서로 다른 구명자켓 5개를 지퍼로 엮은 이 작품은 생존을 위해 위험천만한 바다를 건너야만 하는 난민들을 상기시킨다. 2016년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기둥을 1만4000개의 구명자켓으로 감쌌던 프로젝트의 연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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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한켠에 있는 전시장은 지그의 방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중국의 대표 아방가르드 화가로 꼽히는 쩡판즈가 그린 '지그의 초상화'(Portrait Uli Sigg·2010)부터 지그가 중국, 북한 등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그린 드로잉까지…. 여러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바라본 지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같은 숲 풍경을 서양화와 동양화로 다르게 해석한 니 요우위의 '숲Ⅰ'(Forest Ⅰ·2013), 멀리서는 단색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엮어서 만든 찬위엔쿠의 '셀프 컨트롤'(Self-Control·2017) 등 신선한 작품도 있다.

전시는 5월 20일까지.
세계적 '슈퍼 컬렉터' 울리 지그가 찜한 중국 현대미술 엿보기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