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급 강풍에 헬기 띄우지도 못해 '풍전등화'…대책 마련 필요
'전선 단선' 대비 송전탑 주변 등 '수목 제한구역' 설정 대안도

대형산불이 반복될 때마다 각종 대책을 쏟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강릉 산불에서도 '취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과제를 남겼다.

산불 진화의 경우 헬기 의존도가 높지만, 이번 산불에서는 초속 30m에 달하는 강풍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띄워보지도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번 산불의 원인이 강풍에 쓰러진 나무가 전선을 단선시키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이전에도 강풍에 의한 전선 단선으로 인한 산불이 여러 차례 있었던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릉산불] 갖은 대책에도 또 드러난 한계…진화 장비 확충 절실
◇ 강풍에 공중 진화 발목 잡히자 지상 진화 '악전고투'
12일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10년(2013∼2022년)간 전국에서 연평균 535건의 산불이 나 평균 3천558㏊의 산림을 태웠다.

발생 원인은 입산자 실화 32%, 논·밭두렁 소각 13%, 쓰레기 소각 12%, 담뱃불 실화 6%, 건축물 화재 5%, 성묘객 실화 3%, 어린이 불장난 1% 등 인위적 요인이 72%에 달했다.

이는 산불 10건 중 7건은 '예방'만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뜻을 의미한다.

인위적 요인 외에 봄철 동해안은 '지형, 기상, 연료'라는 3요소가 대형화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이번 산불에서도 봄철 태풍급 강풍인 '양간지풍'(襄杆之風)이 산불 진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8천L(리터)급 초대형 헬기조차 뜨지 못할 정도로 공중 진화가 무력화되면서 지상 진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불이 시작된 곳이 소방차가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골짜기였고 삽시간에 확산하면서 소방차가 배치되더라도 손쓰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마을에 비상소화장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상형 헬기로 불리는 3천L급 고성능 산불 진화차가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강릉을 상징하는 대표적 침엽수인 소나무는 이번에도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산림과 주택을 집어삼켰다.

이는 산불에 강한 내화수림대를 조성하는 방안 역시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재확인시켰다.

공중과 지상의 입체적인 진화를 위해 지상 진화에 필요한 산불 진화 임도 확충, 산불로부터 문화재 등 중요 시설물 보호를 위한 인프라 조성도 소홀히 해선 안 되는 대책임을 상기시켰다.

[강릉산불] 갖은 대책에도 또 드러난 한계…진화 장비 확충 절실
◇ '전선 단선' 산불에 '송전탑 수천기 어떡하나'
또 다른 산불 원인으로 '전선 단선'이 가세한 점도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봄철이면 성인이 서 있기 힘들 정도의 강풍이 부는 동해안에서 '전선 단선'이 그 원인으로서 수면 위로 드러난 건 2004년이다.

그해 3월 10일 속초시 노학동 속초변전소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은 산림 202㏊를 태우고, 이재민 102명을 발생시켰다.

경찰 수사 결과 그 원인이 '고압선에서 발생한 불꽃'이 밝혀지면서 시민사회와 학계에서는 "영동지역은 가급적 송전선로를 지중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도내에 5천여기의 송전탑이 설치돼 있는 점을 고려하면 고압선 등에 의한 산불 발화 가능성이 존재하는 데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중화 방식이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사비와 공사 기간 등 문제로 인해 지중화는 이뤄지지 않았고, 2019년 고성에서 또다시 강풍으로 말미암은 전선 단선으로 인한 대형산불이 발생했다.

강풍 등 불가항력의 자연재해가 더해진 산불이라는 점에서 한전 역시 억울할 노릇이지만, 전선 단선이 대형산불의 원인으로 여러 차례 지목된 만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송전탑 주변에 '수목 제한구역'을 설정해 약 3m 이하의 나무만 심을 수 있게 함으로써 나무로 인한 산불과 화재를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릉산불] 갖은 대책에도 또 드러난 한계…진화 장비 확충 절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