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레 돈키호테는 이발사 바질과 선술집 딸 키트리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스페인 극작가 세르반테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1869년 마리우스 프티파의 안무로 초연됐다. 이번 돈키호테는 국립발레단 솔리스트이자 신예 안무가 송정빈이 재안무를 맡았다. 원작의 명성이 워낙 높았던만큼 재안무 자체가 큰 도전이었을 터. 많은 이들의 기대와 의심 속에 11일 사전 공연(프레스콜)이 열렸다.
약 125분(인터미션 포함)동안 펼쳐진 송정빈의 돈키호테는 군더더기는 덜어내고, 한층 친절해진 느낌이었다. 3시간에 가까웠던 기존 3막 공연은 2막으로 축소되고, 공연 시간도 30분 이상 줄었다. ‘숏폼’ 콘텐츠가 유행하고 드라마·영화 요약본이 인기를 끄는 현대 사회의 템포에 맞춘 셈이다.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장면을 최대한 배제해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로 했다"는 송 안무가의 취지에 걸맞는 구성이었다.

하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1명의 무용수가 퀵 체인지(빠른 분장 전환)를 통해 늙은 돈키호테와 젊은 돈키호테를 함께 연기한다. 돈키호테가 중심이 되는 2막에서는 부츠 대신 발레 슈즈를 신은 젊은 돈키호테가 자신의 좇던 여성 둘시네아와 파 드 되(2인무)를 추는 장면이 새로 만들어졌다. 돈키호테를 통해 희망에 대한 갈망, 이상향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다.
원작과 달리 둘시네아를 별도의 인물로 분리해 관객의 혼선을 줄였다. 이전까지는 돈키호테가 둘시네아와 키트리를 같은 사람으로 잠시 착각했다는 설정 때문에 두 사람을 대개 같은 사람이 연기했다. 송 안무가는 이런 설정이 관객의 몰입에 어려움을 준다고 판단해 둘시네아를 과감하게 새로 만들었다.
돈키호테의 역할을 통해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를 좀 더 입체적으로 보완했고, 그 외의 원작의 강점은 대부분 살렸다. 화려하고 정열적인 음악과 의상 등을 통해 스페인의 정취를 풍성하게 나타냈고, 클래식 발레다움을 살리기 위해 모든 무대를 영상 대신 막으로 꾸몄다.

오리지널 발레 돈키호테의 오랜 팬이었다면, 새 공연이 아쉬울 수 있다. 원작에 비해 지나치게 압축됐다는 느낌과, 돈키호테의 확대된 비중이 오히려 겉돈다고 느낄 여지도 있다. 하지만 발레 공연에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와 빠른 전개를 선호하는 관객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공연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단장은 이번 돈키호테를 두고 "안무적, 테크닉적으로 한국 발레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공연에는 4명의 키트리와 5명의 바질, 그리고 2명의 돈키호테가 무대에 오른다. 공연은 12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