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20대 학령인구를 고객으로 하는 종합대학 시스템은 이미 파산 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대학부터 학문 간 벽을 허물고, 산업 수요에 맞춰 학과 정원을 조정하는 등 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20대 학령인구를 고객으로 하는 종합대학 시스템은 이미 파산 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대학부터 학문 간 벽을 허물고, 산업 수요에 맞춰 학과 정원을 조정하는 등 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고려대 등록금이 평범한 유치원 수준도 안 되는 게 현실입니다. 서울 주요 대학이라고 재정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젊고 유능한 교수들이 더 높은 연봉을 주는 미국 대학, 대기업으로 떠나겠다는데 잡을 방도가 없습니다.”

최근 제21대 총장으로 취임한 김동원 고려대 신임 총장은 2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학의 위기가 곧 국가경쟁력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공감대와 과감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기업 후원금을 받아 채용하는 ‘기금 교수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배터리 인재 양성을 위해 SK그룹의 후원을 받으면 교수명 앞에 SK그룹을 넣는 식이다. 김 총장은 “이미 상당수 미국 대학이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고 소개했다.

▷반도체, 빅데이터 등 첨단산업 인재가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산업체가 요구하는 것과 대학이 인재를 배출하는 데는 시차가 있기 마련입니다. 최근엔 기술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미스매치가 더 심해졌습니다. 산업 수요에 따라 대학과 학문도 변해야 하는데, 가장 빨리 대응하는 방법은 학문 간 벽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수요에 따른 학과 정원 조정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당장 써먹을 지식을 가르치는 건 에듀테크 기업의 역할이지 대학의 역할이 아닙니다. 그 산업이 저물면 그걸 전공한 학생도 끝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걸 배우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게 대학의 역할입니다.”

▷재정난에서 초래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글로벌 인재 경쟁 속에서 우수 교원을 확보하는 게 가장 큰 고민입니다. 현재 국내 대학교수 초봉이 6000만~7000만원인데, 미국에선 이보다 서너 배를 더 받을 수 있으니 젊고 유능한 교수들이 자꾸 해외로 빠져나가요. 빠르게 움직이는 미국 대학들과 경쟁하기 위해 취임한 뒤 가장 먼저 없애버린 게 총장 면접입니다. 수시로 채용하고 절차를 짧게 해 우수 교원을 많이 확보할 계획입니다. 기금 교수제도 곧 내놓을 생각입니다. 대기업 회장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꾸준히 논의해 왔고 긍정적인 얘기를 나눴습니다.”

▷고려대 재정은 양호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어윤대, 이필상 총장 이후로 경영대 총장은 16년 만입니다. 경영대 총장을 뽑은 배경에는 재정 확충에 대한 기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생아 수가 한 해 100만 명에서 20만 명대로 떨어졌습니다. 20대 학령인구를 중심으로 한 대학 모델은 이미 파산한 것이나 마찬가지란 얘깁니다. 평생교육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직업 재교육을 위한 전문대학원과 특수대학원을 키워야 합니다. 또 하나의 기회는 외국인 학생입니다. 미국 대학들처럼 전 세계 수십만 명을 상대로 하는 비대면 강의를 캐시카우로 개척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챗GPT를 두고 대학에서 논란이 뜨겁습니다.

“챗GPT는 절대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기계 파괴운동으로 불리던 러다이트 운동이 실패한 것처럼 인류가 기술 발전을 막으려고 해서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 기술은 더 발전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시를 쓰는 등 창의력이 필요한 분야에선 챗GPT를 제한할 필요도 있겠죠. 총장으로서 교수들에게 활용을 권장할 수는 있겠지만, 강의에 활용할지를 결정하는 건 교수들의 몫입니다.”

▷우수 인재의 의대 쏠림현상이 심합니다.

“의대 쏠림현상은 IMF 금융위기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엔지니어들이 대거 해고되는 걸 보면서 학생들은 자격증이 있는 쪽으로 가야 안전하게 살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죠. 로스쿨, 의대가 그때부터 떴습니다. 이게 해결되려면 노동시장부터 더 유연해져야 합니다. 미국처럼 우수한 이공계 인재에게 두세 배의 연봉을 주는 방식이 정착돼야 합니다. 한국에선 경직된 연봉 구조가 워낙 견고하다 보니 기업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의대 문제는 대학 혼자 풀 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현 정부는 대학규제 완화에 적극적입니다.

“큰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 더 강하게 규제를 완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대학들이 혁신을 주도하고 전 세계의 우수한 인재를 흡수하고 있는 것은 규제가 적기 때문입니다. 50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독일로 유학을 갔어요. 지금은 거꾸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죠. 유럽도 일본도 규제로 경쟁력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여전히 정시·수시 학생 선발 비율을 국가가 정해주는 방식으로는 대학이 창의성과 유연성을 발휘하기 힘듭니다.”

▷고려대의 미래 인재상에도 변화가 있습니까.

“고려대 학생들은 예전부터 기업문화와 조직에 잘 적응한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과거부터 이타적이고 선 굵은 사람들을 많이 배출했어요. 민족대학으로 출발했기에 소시민적인 기능인을 키워내기보다 이 같은 이타적 리더십을 가진 인물을 계속 키워내야 합니다. 앞으론 학생들을 선발할 때 잠재력과 새로운 것을 빨리 흡수하는 학습 능력을 보겠습니다. 수능 1~2점 높은 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들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싱크 빅(think big)’, 크게 생각하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책과 신문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을 이해하는 지혜와 눈을 넓혀주고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어줍니다. 또 대학생은 성인이지만 유일하게 실수가 용인되는 시기입니다. 일찍 안주하지 말길 바랍니다.”

■ 김동원 총장 약력

△1960년 대구 출생
△1982년 고려대 경영대학 졸업
△1993년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노사관계학 석·박사
△1996년 미국 뉴욕주립대 경영대학 교수
△2004년 고려대 경영대학 경영학과 교수
△2011년 고려대 기획예산처장
△2014년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2014년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
△2014년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2014년 고려대 경영대학 학장
△2015년~ 제17대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 회장
△2023년~ 고려대 제21대 총장


정리=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