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커버그의 승부수…VR 헤드셋 가격 전격인하의 속사정 [서기열의 실리콘밸리나우]
저는 지금 메타의 메타버스 기술 연구의 최전선인 리얼리티랩스에 나와있습니다. 최근 마크 저커버그는 메타버스와 AI라는 두 가지 승부수를 던졌죠. VR 헤드셋의 가격을 최대 500달러 인하하며 수요를 자극했습니다. AI 기반 챗봇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서비스에 탑재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는데요. 과연 시장의 평가는 어떤지 저와 함께 살펴보시죠.
저커버그의 승부수…VR 헤드셋 가격 전격인하의 속사정 [서기열의 실리콘밸리나우]
제가 지금 미국에서 단 한 곳만 있는 메타 스토어를 찾았습니다. 작년 5월에 문을 연 이곳은 메타의 VR, AR 제품을 직접 사용해볼 수 있는 곳인데요. 작년 8월에도 제가 이곳을 구독자 여러분께 처음으로 소개해드렸죠. 그때는 VR 헤드셋 퀘스트2의 가격을 100달러 인상한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는데요. 이번엔 가격 인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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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제품이 지난해 10월 출시된 메타 퀘스트 프로 제품입니다. 전문가용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1499달러라는 비싼 가격으로 기존 고객과 시장으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받았죠. 이에 메타는 출시 5개월 만에 가격 인하라는 강력한 카드를 내놨습니다. 지난 5일부터 500달러를 내려 999달러에 판매중입니다. 가격이 세자리 숫자로 내려앉은 겁니다. 심리적 저항선을 낮춰보고자 하는 시도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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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VR 헤드셋인 메타 퀘스트 2는 256GB 기준 499달러에서 429달러로 70달러 인하했습니다. 128GB 용량의 퀘스트2는 가격 변동 없이 399달러입니다. 두 모델의 가격 차이가 30달러 수준으로 줄어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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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사용해본 메타 퀘스트 프로는 한결 높은 해상도로 보다 세밀하게 가상공간을 표현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퀘스트2보다 편안한 착용감도 좋았고, 상대방과 가상공간에서 손뼉을 치거나 주먹을 맞대는 것도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했습니다. 가상 공간에서 제 손을 볼 수 있는 것도 달라진 부분이구요. 간단한 조작으로 가상공간을 보다가 현실공간을 보도록 전환도 가능해진 것도 새로운 부분입니다. 다만 현실공간으로 전환됐을 때 낮은 화질은 고민해볼 부분입니다. 또 999달러라는 가격은 아직도 조금은 비싸게 느껴지네요.
저커버그의 승부수…VR 헤드셋 가격 전격인하의 속사정 [서기열의 실리콘밸리나우]
메타가 이렇게 VR 헤드셋의 가격을 내린 것은 부진한 판매를 돌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커버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채널을 통해서 가격인하를 발표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VR의 세계에 입문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실제로 퀘스트의 판매는 지난해 굉장히 부진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인터내셔널데이터코퍼레이션(IDC)에 따르면 지난 4분기 메타 헤드셋 출하량은 전년 동기 90%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2021년 4분기 출하량이 450만대였는데 1년 만에 약 31만대 수준으로 쪼그라든 겁니다. 급격한 감소가 아닐 수 없네요.
저커버그의 승부수…VR 헤드셋 가격 전격인하의 속사정 [서기열의 실리콘밸리나우]
메타는 2020년에 퀘스트2를 출시했는데요 작년 8월 가격을 100달러 인상했죠. 그게 역효과가 난 겁니다. IDC의 지테시 유브라니 리서치매니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판매되어온 제품인데 소비자를 찾기 힘들었다”며 “최초 구매자와 VR 애호가들을 지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가격인상이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입니다.

블룸버그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가격인하는 헤드셋에 대한 수요가 회사 예상보다 약했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기업 고객과 개인 고객 모두에서 수요 감소가 나타났습니다.

당초 퀘스트 프로는 비즈니스 고객을 잡기 위한 고사양 헤드셋이었는데 기업 고객의 수요도 끌어오지 못했습니다. 퀘스트 프로와 호환되는 외부 앱이 부족했던 것도 수요 부진의 이유였습니다. 메타는 기업 고객을 위해 퀘스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패키지로 만드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둘을 함께 사용해 업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소프트웨어업체 오토데스크와 협업하고 있습니다. 오토데스크는 오토캐드로 잘 알려진 3차원 설계 중심의 협업 기반 소프트웨어 업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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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치열해지는 VR 헤드셋 시장의 경쟁에서 우위를 지키기 위한 조치이기도 합니다. 짧은 동영상으로 전세계를 휩쓴 틱톡의 모회사 바이댄스가 메타의 경쟁 상대입니다. 바이댄스는 2년 전 VR 헤드셋 스타트업 피코를 인수했는데요. 피코의 VR 헤드셋은 가볍고 뛰어난 성능을 앞세워 유럽, 아시아 등에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미중 갈등으로 인해 판매되고 있지 않지만 빠르게 성장해왔는데요. IDC에 따르면 피코의 헤드셋 4분기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110% 증가한 약 29만3000개로 집계됐습니다. 반면 메타의 헤드셋 출하량은 90% 이상 급감하며 약 31만개로 나타났습니다. 피코가 턱 밑까지 쫓아온겁니다.

피코의 주요 헤드셋 가격은 약 450달러입니다. 메타 퀘스트2 128GB의 가격이 399달러, 인하 전 256GB 모델의 가격이 499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메타가 판매 증진을 위해 가격인하라는 카드를 빼든 것이라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저커버그의 승부수…VR 헤드셋 가격 전격인하의 속사정 [서기열의 실리콘밸리나우]
헤드셋 판매 부진으로 리얼리티랩스 부문의 실적은 안 좋았습니다. 지난 4분기 매출은 7억2700만달러로 17% 감소했습니다. 영업손실 137억2000만달러 기록. 지난해 연간 매출은 21억6000만달러로 2021년 연간 22억7000만달러에서 4.8% 감소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메타는 가격 인하 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 개척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메타는 VR 헤드셋을 최근 독일에서 판매하기 시작했고, 중국에서 판매를 놓고 중국 최대 게임업체 텐센트와 협상하고 있는 중입니다. 경쟁자의 심장에 들어가 정면대결을 펼치겠다는 전략입니다.

또 지난주엔 저커버그의 AI 중대 발표도 주목 받았습니다. 생성형 AI 개발 팀을 신설하고 소셜미디어 서비스에 이를 탑재하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에 이어 AI 경쟁에 참여를 선언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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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생성형 AI에 초점을 맞춰 최상위 제품 그룹을 만들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생성형 AI는 텍스트, 음향, 이미지 등 기존 콘텐츠를 사용해 다른 콘텐츠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AI를 말하죠. 오픈AI가 개발한 챗GPT가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MS와 구글도 이런 생성형 AI에 기반한 챗봇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이에 뒤질 세라 그동안 AI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해왔던 메타도 AI 팀 신설을 알린 겁니다. 메타 내 여러 팀에 흩어져있던 AI 관련 전문가들을 통합해 수십명 규모의 팀을 만들고, 팀 콕스 최고제품책임자(CPO)가 이 팀을 이끌 예정입니다.

이렇게 개발한 생성형 AI를 메타의 서비스 전반에 탑재할 계획도 밝혔습니다. 저커버그는 “왓츠앱, 메신저, 인스타그램과 같은 플랫폼의 텍스트와 이미지와 동영상에서 AI 챗봇을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AI 페르소나(인격적 실체) 개발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앞서 저커버그는 이달 초 4분기 실적 발표에서 “메시지, 광고 비즈니스를 비롯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볼 콘텐츠를 결정하는 알고리즘에 AI를 주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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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는 그 전주에 이 생성형 AI의 기반이 되는 거대 AI 언어모델 ‘라마(LLaMA)를 공개했습니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텍스트 생성, 대화, 서면 자료 요약, 수학 문제 풀기, 단백질 구조 예측과 같은 더 복잡한 작업에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메타는 이 개방형 연구모델에 전념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대규모 언어 모델은 기사, 소셜 미디어 게시물, 그 외 인터넷 소스에서 엄청난 양의 디지털 텍스트를 흡수하고 해당 자료를 분석해 프롬프트나 쿼리가 주어질 때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예측하고 생성하는 소프트웨어를 훈련시키는 대규모 AI 시스템입니다. 이 모델은 에세이 작성, 트윗 작성, 챗봇 형태의 대화 생성, 컴퓨터 프로그래밍 코드 제안과 같은 작업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글의 바드의 근간이 되는 람다(LaMDA)도 이런 대규모 언어 모델입니다.

메타는 AI 연구에서 세계적으로 앞선 기업입니다. AI 연구 동향 플랫폼 제타알파에 따르면 지난해 AI 관련 연구 중 피인용 건수 상위 100대 논문 중 가장 많은 논문을 내놓은 곳은 22건의 구글이며 메타가 16건, MS가 8건으로 뒤를 잇고 있습니다.

메타는 앞서 작년 6월 OPT-175B라는 대규모 언어 모델을 출시한 적 있습니다. 작년 말에는 갤럭티카(Galactica)를 내놨지만 사용자들과 부정확한 정보를 일상적으로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발견된 뒤 철회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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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나온 라마는 더 발전된 시스템입니다. 라마의 파라미터(인간 뇌의 시냅스 역할을 하는 매개 변수) 개수는 챗GPT와 바드의 AI 모델보다 현저히 적습니다. GPT-3.5가 1750억 개, 람다가 1370억 개인데 비해 라마는 최대가 650억개에 불과합니다. 라마는 70억, 130억, 330억, 65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4개 모델로 나뉘는데, 필요와 목적에 따라 용량을 골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파라미터 개수를 줄여 빠르고 효율적인 AI 모델을 만든 대신, 학습 데이터량을 늘려 성능을 고도화했다는 게 메타 측 설명입니다. 상식추론, 수리추론 등에서 경쟁력 있는 데이터를 보여줬다고 합니다.

메타는 AI 연구자들이 라마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형으로 연구 모델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기존 오픈AI나 MS, 구글이 폐쇄형으로 운영하는 것과 반대되는 접근입니다. 메타는 라마를 연구용에 초점을 맞춘 비상업적 라이선스 모델로 출시한다며 공익성을 강조했는데요. 개방형으로 출시했다는 것은 기술적 자신감과 함께 AI 시장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도록 해 일종의 기준점과 같은 지위를 노리고 있는 것이란 평가가 나옵니다. 기술 장벽을 포기했기 때문에 당장 수익을 내진 못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되찾게 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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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메타의 승부수에 대해서 시장은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요.

일단 주가를 보면 지난주 메타의 주간 수익률은 8.72%로 빅테크 가운데 가장 높았습니다. 특히 VR 헤드셋 퀘스트의 가격을 인하한 지난 3일 하루에만 6.14% 상승하며 화답했습니다. 메타의 주가는 올 들어서만 53.65% 오르며 고공행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달 2일 지난해 4분기 실적을 시장 기대 이상으로 발표하면서 저커버그 CEO가 “올해는 효율성의 해”라며 비용 감축 의지를 강조한 이후 주가는 크게 올랐습니다.

메타의 AI 전략에 대해서도 시장은 낙관적인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바클레이스는 메타를 엔비디아와 함께 AI 톱픽으로 꼽았습니다. “메타의 생성형 AI와 대규모 언어모델이 소비자 및 기업용 어플리케이션 전반에 걸쳐 일상의 유용성과 생산성에 잠재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굉장히 긍정적인 전망입니다.

모건스탠리도 메타를 알파벳 아마존과 함께 AI 최선호주로 선정했습니다. “이들 플랫폼은 AI 기술 발전으로 매출을 늘리고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됐다는 걸 보여줬다”며 “주가는 현재 목표가보다 최대 10% 더 상승여력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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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오브아메리카는 “데이터가 새로운 원유라면 AI는 새로운 전기”라며 “대규모 언어 모델을 통해 데이터 혁명을 완전히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높게 평가했습니다. 이와 함께 15개 AI 수혜주를 꼽았는데 이 안에 메타도 포함됐습니다. 메타가 AI 슈퍼 컴퓨터를 구축하기 위해 그래픽처리장치 GPU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는 겁니다. 메타의 비즈니스 전반에 걸쳐 AI 기능을 개선하면 메타가 광고 타깃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AI 개발을 통해 콘텐츠 창작자를 메타의 소셜미디어로 끌어들이고 경쟁사에 비해 우수한 콘텐츠와 목표 광고 기능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처럼 VR 헤드셋 가격 인하와 오픈 소스형 생성형 AI 개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룹니다. 물론 퀘스트 차기 모델이 곧 나올 수 있어 가격 인하가 효과를 내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도 있고, 소셜미디어에 생성형 AI를 적용하면 다른 목적보다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커버그의 이런 승부수가 과연 앞으로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의깊게 살펴봐야할 것 같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서기열 특파원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서기열 특파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