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 아르헤리치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피아니스트다. 2004~2019년 사이에 진행된 네 번의 인터뷰와 아르헤리치의 구술을 정리한 서른네 편의 단상을 담았다. 농담을 건네다가도 음악과 예술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던진다. (이세진 옮김, 마음산책, 280쪽, 1만8000원)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금융회사는 어디일까. 정답은 시가총액 4821억달러(약 610조원)의 비자다. 결제회사인 비자는 은행업종인 JP모간체이스(4120억달러), 뱅크오브아메리카(2856억달러), 중국공상은행(2150억달러) 등을 가뿐히 앞선다. 비자의 경쟁사인 마스터카드(3541억달러)도 지구촌에서 몸값이 세 번째로 비싼 금융회사다.사실 글로벌 핀테크 업체와 서비스 대부분이 결제와 관련돼 있다. 미국의 페이팔과 스퀘어, 중국의 알리페이와 텐센트페이, 동남아시아의 고페이, 한국의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페이 등이 그런 예다.대체 결제가 뭐길래 이렇게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일까. <결제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는 “진정한 금융 권력은 결제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결제의 길목을 장악한 기업은 막대한 수수료뿐 아니라 ‘새로운 석유’라고까지 불리는 결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누군가를 결제망에 받아들이거나 배제할 수 있는 힘도 생긴다.책을 쓴 고트프리트 라이브란트는 2012~2019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SWIFT는 민간 은행들이 결성한 조직이지만, 연간 140조달러에 이르는 국제 결제의 90%를 담당하는 결제망을 운영한다. 그가 들려주는 결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게 하는 배경이다.1950년 탄생한 최초의 신용카드인 다이너스클럽은 이랬다. 가맹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카드를 웨이터에게 건네면, 웨이터는 3중으로 된 먹지를 들고 돌아왔다. 서명한 종이는 각각 카드 소지자, 카드 발행사, 레스토랑이 나눠 가졌다. 카드회사는 모아 둔 명세서를 토대로 회원마다 매월 카드값 청구서를 보냈다. 카드값이 100만원이라면 식당은 93만원을 가졌고, 나머지는 다이너스클럽이 수수료로 가져갔다.카드는 급속도로 보급됐지만 문제도 많았다. 결제 금액이 클 때는 식당 같은 가맹점이 은행에 전화를 걸어 승인을 요청한다. 혹시나 잘못 되면 음식값을 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5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카드 사기도 발생했다. 1980년 비자가 모든 카드 뒷면에 마그네틱선을 집어넣어 ‘결제의 디지털화’를 이루면서 비로소 상당 부분 해결됐다. 실시간으로 은행 계좌에서 거래 대금이 빠져나갈 수도 있게 됐다. 직불카드가 신용카드보다 늦게 탄생한 까닭이다. 처음 직불카드를 만든 건 은행이었다. 카드사에 대한 은행들의 반격이었다.이렇게 보면 은행들이 결제 시장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원래 JP모간체이스, 씨티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2만여 개 은행의 소유였다. 그러다 1996년 월마트와 시어스, 세이프웨이 등이 미국 소매업체를 대표해 비자와 마스터카드에 소송을 걸었다. 두 회사가 독과점 지위를 남용했다며 1000억달러에 이르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은행들은 법적 책임을 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두 회사를 팔아버렸다. 세계적으로 결제 금액은 계속 커지고 있기에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엄청난 돈을 쓸어 담는다. 지난해 비자를 통한 거래금액은 14조달러로,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8배에 달한다. 순매출이 293억달러인데 그 절반가량을 순이익으로 남겼다.‘어디에 돈을 쓰는가’만큼 값진 정보도 없다. 단순히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는지’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를 통해 대출을 할 수도 맞춤형 광고를 붙일 수도 있다. 결제 정보가 돈이 된다는 얘기다. 온갖 플레이어가 결제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민간이 결제 정보를 독식하도록 내버려 두기를 꺼린다. 중국 정부가 알리페이를 규제하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인 ‘디지털 위안화’ 보급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책은 장단점이 뚜렷하다. 저자가 서문에 밝혔듯이 일반인을 위한 책이다. 내용이 쉽고 결제의 역사와 현황을 잘 개괄했다. 대신 어느 부분 하나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을 조금 안다는 사람에게는 아쉬움을 남긴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피카소의 그림은 뭐가 그렇게 특별하길래 ‘세기의 명화’가 된 걸까.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은 거장의 작품을 보고 ‘스탕달 증후군’(뛰어난 예술작품을 보고 순간적으로 호흡곤란, 현기증 등을 겪는 것)을 경험했다고 하는데, 나는 왜 아무런 느낌이 안 드는 걸까. 수많은 그림 속에서 ‘좋은 작품’을 골라내는 기준은 무엇일까.아무리 미술 전시를 찾는 애호가가 늘어났다지만, 그 속에서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렇다 보니 유명한 전시를 가도 소셜미디어에 올릴 사진만 찍을 뿐 가슴을 울리거나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은 그다지 없다.<그림 감상도 공부가 필요합니다>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인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은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가려내는 능력은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30년 가까이 미술관을 운영해온 이 관장은 대중과 미술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여러 권의 책을 쓴 ‘베테랑 작가’다. 작품을 제대로 보는 눈을 기르려면 프랑스어나 골프를 배우는 것처럼 작가의 생애, 표현기법, 그 안에 담긴 의미 등을 공부해야만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책은 빈센트 반 고흐,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에드바르 뭉크 등 미술사에서 거장으로 꼽히는 이들의 작품을 분석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여기에 프란스 할스, 아르놀트 뵈클린, 장 시메옹 샤르댕 등 일반인에겐 생소하지만 미술사에 큰 업적을 남긴 화가들도 소개한다. ‘걸작이 왜 걸작인지’를 공부하다 보면 작품을 보는 눈이 생긴다.예컨대 이런 식이다. 고흐의 ‘붓꽃-아이리스’는 고흐가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기쁜 소식’, ‘행운’의 꽃말을 지닌 붓꽃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으며 그린 그림이다. 특히 보라색 붓꽃과 보색 관계인 노란색을 사용해 강렬한 느낌을 주고, 장식미를 돋보이게 했다. 정신질환을 앓으면서도 끊임없는 자기암시를 통해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를 강렬한 색채로 표현한 작품이기 때문에 걸작으로 꼽힌 것이다.현학적인 설명보다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미술사적 의의를 풀어내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클로드 모네의 ‘정원의 여인들’ 속 네 명의 여인은 사실 모네의 아내인 카미유가 1인 4역을 맡았다는 것 등 숨겨진 뒷이야기를 읽는 것도 묘미다.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어느 날 걸려 온 전화 한 통.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깜짝 놀랄 상황이 전해졌다. 아버지가 창문으로 뛰어내리려고 시도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12주 동안 여섯 번이나. 파킨슨병에 걸린 그의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했고 정신에도 문제가 생겼다. 평범하기만 했던 가족의 일상은 산산조각이 났다.아들은 상심에 빠진 아버지의 삶을 글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위기를 극복할 단서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는 우선 매일 아침 이메일로 아버지에게 질문거리를 던졌다. 이메일을 보내는 것은 아버지에게는 소일거리를, 어머니에게는 휴식을, 가족들에게는 이야깃거리를 선물했다. 첫 번째 질문은 가장 단순한 것부터 시작했다. “아버지, 어린 시절에 어떤 장난감을 가장 좋아하셨어요?”<위기의 쓸모>의 저자 브루스 파일러는 일곱 권의 책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은 인기 작가다. 그는 2015년부터 5년간 자신의 아버지처럼 인생의 위기를 맞은 이들 225명을 만나 그들의 라이프스토리를 들었다. 그런 뒤 인생의 위기를 52가지로 분류했다.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생애전환의 도구를 7가지로 정리했다.저자는 타인의 다양한 위기 극복 사례를 통해 독자에게 삶의 힌트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중 하나는 글을 쓰는 것이었다.프로젝트를 끝낸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도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요.”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