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안전문제·시민충돌 가능성"…6일 철거 예고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 사태 반복 우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서울광장에 시민분향소를 기습적으로 설치하며 서울시와 마찰을 빚고 있다.

서울시는 오는 6일 오후 1시까지 분향소를 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에 들어가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유족과 시민단체 측은 밤새 분향소를 지키며 서울시·경찰과 대치 중이다.

철거와 설치를 반복하며 수 년간 갖은 사회적 갈등을 낳은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석달 전 대통령도 서울광장서 조문했는데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와 유가족협의회가 분향소를 설치한 장소는 서울도서관 앞 인도다.

참사 직후인 지난해 10월31일∼11월5일 서울광장 분향소가 들어선 지점과 멀지 않다.

당시 이 분향소에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 등 모두 3만8천283명이 다녀갔다.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직접 설치·운영했던 서울시는 이번엔 규정상 분향소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민·유족단체가 서울광장 사용 신청을 하지 않은 채 무단으로 설치한 분향소라는 것이다.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광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시에 사용신고서를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받지 않고 광장을 무단 점유한 경우 시설물의 철거를 명하거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서울광장은 6천449㎡ 규모 타원형 잔디와 이를 둘러싸는 6천758㎡ 규모 화강석 도보로 이뤄져 있다.

분향소가 세워진 서울도서관 앞도 광장에 포함된다.

서울시는 5일 입장을 내고 "통보 없는 기습 시설물 설치에 거듭 유감을 표한다.

유가족분들이 마음 깊이 추구하시는 국민 공감을 얻기에도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행정집행 계획은 변함 없다"고 밝혔다.

시는 "불법 시설물로 인한 안전 문제, 시민들 간의 충돌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유가족분들은 이태원 멀지 않은 곳에 상징성 있고 안온한 공간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하셨다.

그래서 녹사평역 내에 우천 시에도 불편함이 없고 충분한 크기의 장소를 제안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책회의 관계자는 "지하 4층에 마련된 찾아가기도 힘든 공간에서 조문을 받을 수 있겠나"라며 시가 제안한 녹사평역 내 추모공간은 부적절하다고 반발했다.
◇ 대한문 분향소 전철 밟을까
시민분향소는 전날 설치 단계부터 충돌을 빚었다.

현장에 있던 경찰관들과 서울시 공무원들이 설치를 저지하고 천막 철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대치 과정에서 20대 유가족 한 명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유족단체와 경찰 등에 따르면 이 유가족은 현재 건강을 회복해 퇴원했다.

양측이 물러서지 않으면서 과거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희생자 분향소를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쌍용차 노조와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쌍용차 해고 사태와 관련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2012년 4월 덕수궁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렸다.

서울 중구청은 이듬해 4월 분향소를 철거하고 화단을 설치했지만, 대책위는 화단 앞에 재차 임시 분향소를 세웠다.

구청은 그해 6월에도 분향소를 철거했다.

2018년 대한문 앞 분향소가 다시 세워지자 그동안 이곳에서 집회를 열어온 보수 단체와 쌍용차 노조 측이 충돌했다.

분향소는 같은해 8월 자진 철거됐다.

그러나 분향소 강제 철거를 둘러싼 대책위와 구청·경찰 사이 법적 다툼은 내내 계속됐다.
대법원은 2013년 6월 행정대집행에 반발하는 대책위 관계자들을 저지한 경찰의 행위가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대책위 관계자들은 기자회견을 위해 분향소가 있던 장소에 진입하려다가 경찰관을 밀치거나 방패를 잡아당기는 등 실랑이를 벌여 연행되기도 했다.

대법원은 대책위가 농성하는 동안 여러 차례 화단을 파손했고 농성장 천막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이 대한문 앞을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책위의 진입을 소극적으로 막기만 한 건 최소한의 조치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중구청의 행정대집행 역시 "상습적 도로 불법점용을 중지시키기 위한 것으로 적법했다"는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서울시가 예고한 대로 행정대집행을 강행해 분향소 철거에 나선다면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책회의 관계자는 "독립적인 진상규명 조사기구 설치를 위한 특별법만 제정된다면 분향소를 철거할 계획"이라며 "그 전에 시에서 강제철거를 한다면 보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