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 공표, 외국선 찾기 힘든 독특한 죄…국민 알 권리와 본질적으로 충돌
검찰, 법이 금지한 피의사실 공표를 '훈령' 통해 해오다 점진적으로 제한…논란은 계속
피의사실 공표로 처벌된 사례 한 번도 없어…사실상 사문화에도 존치 필요성 여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측근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놓고 '피의사실 공표' 논란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1일 정진상 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엄희준·강백신 부장검사를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고발했다.

이어 지난 19일엔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산하 '대장동 수사팀'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검사를 공수처에 고발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관련 수사가 본격화한 이후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검찰의 불법적인 피의사실 흘리기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정미경 전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지난 17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이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 의원은 검찰이 "망신 주기를 위해서 언론에 조각에 불과한 사실을 흘리고 야당 대표를 악마화하고 있다"며 "(구속·압수수색) 영장 청구서는 공개되는 서류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정 전 의원은 이에 대해 "사람을 구속하거나 압수수색을 할 때, 영장을 청구하는 단계에서부터는 피의사실 공표죄에 거의 해당하지 않는다"며 "그때는 국민의 알 권리 측면에서 언론에서 다 쓰고 있다"고 반박했다.

과연 민주당 측 주장처럼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을 언론에 알리는 것이 피의사실 공표죄에 해당할까.

아니면 정 전 의원의 지적처럼 특정 단계에서는 언론에서 검찰 수사 내용을 보도해도 문제가 없는 것일까.

[팩트체크] 이재명에 대한 검찰 수사상황 유출, 피의사실 공표죄 해당할까
◇ 형법상 피의사실을 공표한 검사·경찰관은 3년 이하 징역
피의사실 공표죄는 형법 126조에서 규정한 범죄로, 검찰이나 경찰 등 범죄수사에 관련한 일을 하는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 제기 전'에 공표하는 행위를 말한다.

피의사실은 통상 고소장, 고발장, 범죄인지서, 긴급체포서, 체포영장, 구속영장, 압수수색영장 등에 기재된 범죄사실을 가리킨다.

형법은 이런 피의사실을 (불)특정 다수에게 알렸을 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형법에선 피의사실 공표를 죄로 금지하고 있으나 과거 검찰은 대검찰청 훈령인 '수사사건 공보에 관한 준칙'을 근거로 피의사실을 공개해왔다.

그러다가 2009년 5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계기로 일대 전환이 이뤄졌다.

검찰은 당시 '박연차 정·관계 로비 사건'을 수사하면서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한 혐의 사실을 연일 공개 브리핑했고, 언론들도 관련 내용을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심지어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를 봉하마을 사저에서부터 생중계까지 했다.

권양숙 여사가 억대의 시계를 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격노한 노 전 대통령이 이를 논에 버렸다는 이른바 '논두렁 시계' 보도도 이런 와중에 나왔다.

법무부는 이에 그해 6월 학계·언론계·법조계 인사 등으로 '수사공보제도 개선위원회'를 꾸리고 이듬해인 2010년 1월 법무부 훈령인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이하 수사공보준칙)을 제정했다.

수사공보준칙은 기소 전 수사내용의 공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예외적으로 공개할 수 있는 사유를 열거하고 있다.

또한 수사내용을 알릴 땐 기관장의 승인을 받은 공보자료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과도한' 검찰 수사와 이에 대한 언론의 '과잉' 보도로 인해 피의사실 공표죄가 재차 도마 위에 올랐다.

법무부는 이에 기존 수사공보준칙을 폐지하고 2019년 10월 공표 금지의 강도를 더욱 높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하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을 제정했다.

이후 몇 차례 더 개정됐지만 주요 골격은 유지되고 있다.

이소영 의원과 정미경 전 의원 간 설전과 관련해서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은 중요 사건으로서 언론의 요청이 있는 등의 경우 수사단계별로 공개할 수 있는 정보를 열거하고 있다.

예컨대 압수수색 단계에서는 압수수색 대상 기관이나 기업, 압수수색 일시와 장소, 죄명 등을, 체포와 구속 단계에서는 피의자, 죄명, 영장에 기재된 범위 내의 혐의 사실 등을 공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제한적이지만 검찰이 수사 관련 내용을 공개하고 언론이 이를 보도할 수 있어 정 전 의원의 말이 틀렸다고 볼 수 없다.

[팩트체크] 이재명에 대한 검찰 수사상황 유출, 피의사실 공표죄 해당할까
◇ 실제 피의사실 공표죄로 처벌된 사례는 '0'
그렇다고 검찰의 이런 형사사건 공개 행위가 법 위반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법률에서 금지한 행위를 행정규칙에 불과한 훈령이 허용한다는 것이 법 체계상 맞지 않다는 게 법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엄격하게 따지고 들면 현재 검찰의 언론 브리핑을 불법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이처럼 규정된 절차에 따르지 않고 특정 언론사에 피의사실을 '귀띔'해줘 보도되는 뉴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래 피의사실 공표죄로 처벌된 전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

제대로 기소조차 되지 않는다.

법무부의 검찰 과거사위원회(이하 과거사위원회)가 2019년 5월 발표한 ''피의사실 공표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에 따르면 2008∼2018년 검찰에 피의사실 공표죄로 접수된 사건 347건 중 기소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형법에서 피의사실 공표를 죄로 명시하고 있고, 이 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행위가 그동안 많았음에도 제대로 처벌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피의사실 공표죄, 국민의 알 권리와 충돌…외국선 유례 찾기 힘들어
이 같은 사정은 피의사실 공표죄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이 죄로 처벌된 전례가 없는 배경에는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실정이 있다.

이 죄를 저지르는 주체도 검찰이고, 이 죄를 엄단하는 주체도 검찰이다.

하지만 여기엔 이 조항이 또 다른 기본권과 충돌하는 정황도 크게 작용한다.

피의사실 공표죄는 통상 피의자의 기본권과 국가의 범죄수사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입법됐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국민의 알 권리와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

피의사실은 수사기관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해 취득한 정보로서 '공공의 자산'에 해당해 알 권리의 대상이 된다는 논리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은 범죄수사에 관한 정보를 비공개 대상 정보로 규정하면서도 '공개될 경우 그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이를 뒤집으면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범죄수사에 관한 정보도 원칙적으로 공개 대상 정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대법원도 1991년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일반 국민들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제반 범죄에 관한 알 권리를 가지고 있고,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에 관해 발표하는 것은 국민들의 이런 권리를 충족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의 헌법적합성 검토'라는 논문에서 "공권력의 주체인 수사기관이 특정 국민을 피의자로 해 어떤 수사를 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알 권리의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나라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피의사실 공표죄가 없다는 점도 이런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형사청잭연구원의 연구보고서 '피의사실 공표죄의 합리적 적용방안 연구'에 따르면 미국, 독일, 스위스, 일본 등 주요국의 법령에서 피의사실 공표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규정을 찾을 수 없다.

특히 일본의 경우 공소제기 전 피의사실을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실로 간주해 이를 공표한다고 해도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우리 형법상 피의사실 공표죄는 대단히 특이한 처벌 규정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팩트체크] 이재명에 대한 검찰 수사상황 유출, 피의사실 공표죄 해당할까
◇ 피의자 인권 보호와 '알 권리' 조화시키는 대안 필요
법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됐고 주요국에서 입법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면 피의사실 공표죄를 폐지해야 할까.

검찰의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에 따른 폐단도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폐지론이 설득력을 갖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사위원회는 2019년 당시 자료에서 "검찰은 수사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공소제기 전 피의사실을 공표해 피의자를 압박하고 유죄의 심증을 부추기는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반대로 수사에 부담이 되는 경우 형법 규정에 기대어 언론의 취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진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파편적 사실들이 여과 없이 보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을 종합하면 결국 피의자의 기본권 보호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두 가치를 절충적으로 보장할 대안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은 이미 1991년 판결에서 그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발표는 ▲ 원칙적으로 일반 국민들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관해 ▲ 객관적이고도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실 발표에 한정돼야 하고 ▲ 정당한 목적하에 수사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에 의해 공식의 절차에 따라야 하며 ▲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해 유죄를 속단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나 추측 또는 예단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을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표행위가 위법성을 조각하는지를 판단할 때 공표 목적의 공익성과 공표 내용의 공공성, 공표의 필요성, 공표된 피의사실의 객관성 및 정확성, 공표의 절차와 형식, 그 표현 방법, 피의사실의 공표로 인하여 생기는 피(被)침해 이익의 성질,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2019년 '피의사실 공표 정책토론회'에 제출한 발제문 '피의사실공표죄의 헌법적 문제와 개선방안'에서 "수사기관에 의한 피의사실 공표가 무조건 형법에 의한 처벌 대상이 아니라, 헌법이 요구하는 공익과의 관계에서 충돌되는 또 다른 기본권인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 사이에 이익 형량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재 진행 중인 검찰의 대장동 의혹 수사와 이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하는지는 앞으로 수사기관과 법원이 판단해야 할 사안이고, 몇 가지 단편적 사실만으로 판정하기는 어렵다.

이는 피의사실 공표가 국민의 알 권리라는 고도의 추상적인 가치와 본질적으로 길항하는 데다, 이런 길항관계를 깔끔하게 해소해줄 만큼 관련 법 조항이나 규정이 명쾌하게 정비돼 있지 않은 사정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