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 정상회담은 3년 만에 정상 간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데 의의가 있다. 25분간의 만남에서 두 정상은 협력을 다짐하면서도 경제·안보 문제에서 견해차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핵 도발을 막기 위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주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북한 핵실험을 말릴 의무가 있다”고 촉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에 시 주석은 “진정한 다자주의를 함께 만들어 나가길 원한다”고 했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 체제 및 대중국 견제 전략에 대한 비판으로 들린다. “글로벌 공급망의 원활한 흐름을 함께 보장해야 한다”고 한 것도 미국의 반도체 등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디커플링)하려는 행보에 한국이 동참하지 말라는 압박이다. 그러면서도 한·중 관계를 “이사할 수 없는 가까운 이웃이자 떼려야 뗄 수 없는 파트너”라고 했다. 중국 고위 당국자가 우리 당국자를 만날 때마다 으레 내놓는 말이다. 이 말이 진정성을 지니려면 시 주석은 한·미의 요청대로 북핵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하지만, “한국이 남북한 관계를 적극 개선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공을 던진 것을 보면 그럴 뜻이 없는 것처럼 들린다.

중국은 틈만 나면 비핵화를 위한 ‘건설적 역할’을 언급해놓고 실천한 적이 없다. 오히려 대북 제재는 물론 규탄 성명조차 번번이 가로막았다. 이러니 북한이 거리낌 없이 도발 수위를 높이며 위기를 키우는 것이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 조금이라도 인정받으려면 더 이상 북한의 도발을 뒤에서 받쳐주고 ‘면죄부’를 줘선 안 된다. 그러나 시 주석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북한의 입장을 ‘합리적 우려’라며 위기를 한·미 탓으로 돌린 것을 보면 역시 회의적이다. 이런 식이라면 ‘가까운 이웃’은 또 헛말에 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