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사람에게도 '떨켜'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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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생각법이 궁금하다고?
일단 말하고 생각하기
말을 뒤집으면 통찰이 깃들기도
나무는 떨켜로 잎과 이별 준비
사람 잃는 일엔 왜 그런 게 없을까
애도라 쓰고 떨켜라 읽는다
이소연 시인
일단 말하고 생각하기
말을 뒤집으면 통찰이 깃들기도
나무는 떨켜로 잎과 이별 준비
사람 잃는 일엔 왜 그런 게 없을까
애도라 쓰고 떨켜라 읽는다
이소연 시인
![[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사람에게도 '떨켜'가 있다면](https://img.hankyung.com/photo/202211/07.29648277.1.jpg)
저렇게 많이 떨어지면 아프지 않을까? 잎을 다 떨구고 나면 몸살을 앓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참을 보다 보니 저 나뭇잎은 넙치 같고 이 나뭇잎은 누군가 벗어놓은 양말 같다. 나는 하릴없이 낙엽마다 아빠 허리에 붙었다가 떨어진 파스 같네, 감은 눈 같네, 달걀 껍데기 같네, 닮은 꼴을 찾아주다가 며칠 전 술자리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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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사람에게도 '떨켜'가 있다면](https://img.hankyung.com/photo/202211/AA.31722419.1.jpg)
나무는 가을쯤 ‘떨켜’란 세포층을 만든다고 한다. 잎자루와 가지가 붙는 곳에 물관을 막아 잎을 떨어뜨릴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나무도 이렇게 한 계절을 떠나보내기 위해 노력을 한다는 게 신기하다. 어쩌면 공들인 생각을 생각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서도 ‘떨켜’ 같은 말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한 편의 시를 완성하려고 밤새도록 너무 많은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 생각 없는 말이 앉았다간 자리가 없었다면 끝내 쓰지 못했을 문장이 있다.
나무가 이별하는 방법이나 생각이 생각을 떠나보내는 일이나 아름답기 그지없다. ‘떨켜’ 있는 것들을 찾아 놓고 보니 문득 부끄러워진다. 느닷없고 대책 없고 황당한 지난 연애들이 떠올라서다. 나는 죽도록 사랑하다가도 예고 없이 헤어졌다. 홧김에 헤어지고, 전화 안 받아서 헤어지고, 문자 봤다고 헤어지고, 몰래 담배 피웠다고 헤어지고, 내가 준 꽃다발을 행사장에 놓고 왔다고 헤어지고, 휴대폰 비밀번호를 안 가르쳐줘서 헤어졌다. 떠올리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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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의 일이다. 차가 없던 시절, 전주역에 내려서 시댁인 진안까지 택시를 타고 가곤 했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하실 분이 서운할 정도로 남편을 나무랐다. 돈 아껴 쓰라며, 돈을 길에 버리고 다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그것이 정을 떼려고 하는 ‘떨켜’였을까? 남편은 그날 밤 내내 잠을 설쳤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남편은 시 한 편 쓰지 못하고 큰 상실감에 빠져들었다. 사람이 사람을 잃는 일에는 왜 ‘떨켜’라는 세포가 없을까? 나뭇잎 수만 개를 한 번에 잃을 준비를 하는 나무의 일과 단 한 사람 잃을 준비도 못 하는 사람의 일에 대해 생각한다.
시월의 마지막 날, 이태원 참사가 있었다. 나는 모든 일을 멈추고 낮달같이 몸져누웠다. 이 참담 앞에서는 슬픔이 견딜 수 있는 것이라는 게 이상하다. 애도라고 쓰고 떨켜라고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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