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싫어했던 작가가 창조한 '스파이 스마일리'
영국 스파이 소설의 대가 존 르카레(1931~2020)는 ‘007 제임스 본드’를 싫어했다. “본드는 첩보원이 아니라 살인 면허를 가진 국제적인 갱스터”라고 평했다. 그는 007과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스파이 ‘조지 스마일리’를 의도적으로 창조했다. 스마일리는 중년에 키가 작고 뚱뚱했다. 머리가 벗어졌고 안경을 썼다. 싸움은 전혀 할 줄 몰랐다. 대신 기억력이 뛰어났다. 서류 속에서 단서를 찾아냈고, 사람을 꿰뚫어 봤다. 평범한 외양 속에 교활함과 무자비함을 감췄다.

이 스마일리를 주인공으로 한 고전 스파이 소설 <오너러블 스쿨보이 1·2>(열린책들)가 출간됐다. 1977년 세상에 나온 이 소설은 1978년 한국에서 <써커스에서 온 스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지만 절판돼 구할 길이 없었다. 스마일리와 러시아 스파이 마스터 카를라의 대결을 그린 ‘카를라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스마일리는 ‘서커스’라 불리는 영국 정보부에 최고위직으로 숨어든 러시아 스파이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지난한 여정 끝에 그를 색출했다. 그 공로로 그는 정보부 수장에 오른다. <오너러블 스쿨보이>는 그 직후의 이야기를 그린다. 1974년 스마일리는 카를라가 남긴 흔적을 쫓아 홍콩에서 벌어지는 돈세탁에 주목한다. 러시아 자금이 홍콩의 유력 인사에게 모여드는 것을 확인한 그는 임시 공작원이자 아시아 전문 기자 제리 웨스터비를 홍콩으로 파견하고, 그의 임무는 태국과 라오스, 베트남으로 이어진다.

소설은 런던에서 작전을 지휘하는 스마일리와 아시아에서 발로 뛰는 웨스터비의 이중주로 이뤄졌다. 스마일리가 책상 앞에 앉아 문서 속 비밀을 파헤치면 웨스터비는 그 문서가 가리키는 인물들을 취조하고 회유한다. 국가 간 싸움 속에서 인간들이 장기짝으로 이용되고 버려지는 모습을 그려낸다.

르카레는 007을 창조한 이언 플레밍(1908~1964)처럼 실제로 영국 정보부에서 일했다. 더 타임스가 선정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명에 플레밍(14위)과 함께 22위로 이름을 올렸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