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동문 카톡방에 자기 이름과 졸업 연도를 밝힐 때 보통은 이름 옆에 OO회라고 쓰지만 OO기라고 쓰는 사람도 상당수 있다.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동문일수록 OO기라고 당당하게 쓰곤 해서 좀 당황스럽다. 그냥 섞어 쓰면 되지 않느냐고 가볍게 지나치면 안 된다. 언어생활은 우리의 행동양식에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어문 연구를 주관하는 국립국어원이 ‘기’와 ‘회’를 묻는 질의에 해설 응답을 통해 졸업생 표기에 ‘기’를 사용할 것을 권장했다(2008.3.19.). 하지만 이는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기(期)는 일정한 기간씩 되풀이되는 일의 하나하나의 과정이고, 회(回)는 횟수를 나타내는 말 또는 돌아오는 차례라고 나와 있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졸업생을 지칭할 때 ‘OO기’나 ‘OO회’ 어느 것을 써도 무방하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그 용어가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살펴야 마땅하다. ‘기’는 ‘일정한 기간’에 초점이 있다. 군대 등 조직체계가 강하게 유지되는 곳에서 주로 사용한다. 해병 OO기, 육군 무슨 병과 OO기, 공군 하사관 OO기로 쓴다. 한 해에 2개 기수 또는 여러 개 기수를 배출할 수도 있다. (다만, 여러 번 치르는 각종 시험도 통상 OO회로 지칭한다.)
사관학교나 경찰대학은 OO기 졸업식이 맞다. 같은 맥락에서 연수원 OO기라고 한다. 기수별로 조직의 상하, 소위 ‘기수문화’ 서열 정리가 필요한 곳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회’는 ‘돌아오는 차례’다. 학교에서 OO회는 춘하추동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음 차례에 들어온 신입생이 졸업생을 이어가는 의미다. 대부분 학교에서 OO기 졸업식이 아니라 OO회 졸업식을 거행해 왔다. 홈페이지 등 각 학교 자료를 보면 대한민국의 전통 명문고 모두 OO회 졸업 동문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그런데도 언제부터인지 은연중에 ‘OO회’가 아니라 ‘OO기’가 혼용되더니 오히려 ‘OO기’가 맞는 듯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새삼스럽게 ‘기수문화’를 따르려는 학교가 아니라면 ‘OO고 OO회’를 쓰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서는 혹시, 고등학교 몇 회 졸업생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