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폭염 이어지며 최악 환경…껑충 뛴 농약값에 방제도 부담

지난가을 배추 농사에 이어 올해 감자까지 망치니 여기 농민들은 그저 하늘만 원망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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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강원 춘천시 서면의 드넓은 감자밭에서 만난 김선복(65) 서춘천 감자생산협의회장은 엉망진창으로 시들어버린 감자잎을 보며 한숨지었다.
춘천 감자 주산지인 서면 신매리, 서상리 일원은 예년 같았다면 푸른 감자밭에서 농민들이 땀 흘리며 씨알 굵은 감자들을 캐낼 때다.
하지만 김 회장 얘기를 듣고 서면 곳곳을 둘러보니, 마치 누군가 제초제를 뿌린 것처럼 잎들이 갈색으로 변해 시든 감자밭이 눈에 띄었다.

올해 작황을 묻는 기자에게 임씨는 대답보다 먼저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을 따라가니 썩은 감자가 보였다.
밭 한가운데는 수확한 감자를 담는 커다란 자루가 놓였지만, 밭고랑 구석에는 썩어서 내다 버릴 감자가 쌓여있었다.
임씨는 "감자를 일찍 심어서 이달 초에 거둔 사람들은 그나마 형편이 낫다"며 "주변 농가들이 수확하는 것을 봐도 하루가 지날수록 썩은 감자가 늘어나 올해 이 동네 작황은 엉망이 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수확기 농민들은 썩은 감자를 캐내며 하늘을 탓했다.
"차라리 그냥 가물기나 하지…" 뙤약볕에서 땀 흘리던 농민들은 원망을 속으로 삼켰다.
가뭄이라면 어떻게든 물을 끌어와서 농사라도 짓겠지만, 폭우와 폭염이 겹치는 날씨가 거듭하면서 감자가 썩어가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는 까닭이다.

홍창현(56) 신매감자영농조합 대표는 "잎이라도 생생하다면 약이라도 쳐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농민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아야 한다"며 "무·배추에서 오는 무름병 소식도 들리는데 그저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곳 농민들은 흔히들 키우는 '수미' 품종보다 병해에 강하다고 알려진 '두백'이나 '설봉'을 주로 키운다.
씨감자를 심은 뒤 수확까지 110∼120일 동안 적으면 3번, 많으면 5번쯤 약을 치지만, 올해처럼 고온다습한 날씨로 돌림병 위험이 커지면 추가 방제를 해야 한다.
껑충 뛴 인건비와 농약값은 농가에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온다.
홍 대표는 "약 한번 뿌리는데 100만원은 더 들어가 농민들은 좀처럼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상기후에 망쳐버린 감자 농사는 춘천 뿐만의 일이 아니었다.

6월 하순부터 최근까지 누적 강수량이 300㎜가 넘은 데다 높은 습도와 고온 등 기상 영향으로 해안면 전체 농가 94곳 중 65곳, 124㏊의 밭에서 재배 중인 감자가 썩어가고 있다.
지속하는 폭염의 영향으로 무름병도 번지고 있다.
이에 양구군은 지난 5일부터 해안면 일원의 피해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수확기까지 3주가량 남은 상황에서 알이 더 굵어져야 하지만 수확할 수 없는 상태로 판단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양구군은 피해 농가로부터 농업재해 신고를 받는 등 정밀 조사를 거쳐 결과에 따라 일부 피해를 보상할 계획이다.
또 농민들에게 농작물 재배보험 가입을 권장해 앞으로 피해 농가가 최소한의 소득 보전을 보장받도록 할 방침이다.

농림수산식품부 국장급 관계자들이 이달 들어 도내 감자 재배지를 수 차례 찾아 작황과 역병 발생 정도를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 강원지역본부도 농촌진흥청, 도 농업기술원 등과 함께 병해 발생 징후를 파악하고 농가에 방제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현재 도내 감자 썩음·무름병 피해는 서춘천과 양구 해안면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며 "농가 피해 상황을 조사해 적절한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