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형 대표 "미래선박 AI시스템 위해 1년 중 100일 배에서 지냈죠"
“자율운항 선박의 ‘뇌’에 해당하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1년 중 100일 이상을 배에서 보냈습니다. 누구나 걱정 없이 바다에 나갈 수 있는 기술을 만들 겁니다.”

임도형 현대중공업 아비커스 대표(사진)는 ‘AI 광(狂)’이다. 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할 때부터 AI의 매력에 빠졌다. 임 대표는 “사람이 일일이 가르치지 않더라도 스스로 학습해 목적을 달성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에 연구원으로 입사한 뒤에도 AI를 활용할 수 있는 신사업을 고민하다가 HD현대(옛 현대중공업지주)의 자율운항 선박 전문회사 아비커스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 임 대표는 ‘연구원이 무슨 사업을 하냐’며 대표이사 자리를 고사했다. 하지만 그룹의 미래가 달린 사업인 만큼 개발 담당자가 대표직을 맡아달라는 주변의 설득에 아비커스 대표를 맡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고(故) 정주영 회장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책을 반복해서 읽었다”며 “정 회장의 도전 정신을 본받아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자율운항 선박 분야를 이끌겠다는 포부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2018년 한국조선해양 미래기술연구원에서 ‘자율운항연구실’을 직접 꾸렸다. 연구원 14명과 밤을 새워 연구해 약 1년 반 만에 자율운항 솔루션을 개발했다. 입사 후 꾸준히 현대중공업의 주요 제품인 선박, 전동기, 엔진 설계 및 동역학 연구를 이어온 게 도움이 됐다.

임 대표는 “기본 설계에 대한 기술을 모른 채 사업에 뛰어들면 남들 흉내 내는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며 “시장을 선도하려면 동작 원리의 핵심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 대표가 이때 개발한 기술들은 아비커스 자율운항의 핵심인 하이나스(HiNAS·운항)와 하이바스(HiBAS·정박)의 뼈대가 됐다. 하이나스는 선박의 뇌 역할을 한다. AI 센서로 주변 장애물을 인식하고 위험도를 분석한다. 하이바스는 선박의 이안, 접안을 도와준다.

아비커스는 이달 중 세계 최초로 자율운항 선박 대양 횡단에 도전한다. 횡단에 성공한 뒤 하이나스 상용화, 글로벌 선주 대상 마케팅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레저 보트용 솔루션 시제품도 올해 말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임 대표는 “미국 마이애미 보트쇼, 프랑스 칸 보트쇼 등 세계적인 전시회에서 자율운항 기술이 들어간 레저 보트를 선보일 것”이라며 “이를 위해 연말까지 70여 명의 인재를 확보하려 한다”고 말했다.

현재 30여 명이 근무하고 있는 아비커스는 현대중공업에서 가장 젊은 조직이다. 직원 평균 연령이 30대 초반이다. 임 대표는 “연구원 출신이기 때문에 기술 개발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고민을 터놓고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싶으냐는 질문엔 ‘자부심’이란 답이 돌아왔다. 임 대표는 “인류에게 바다는 공포의 대상”이라며 “그런 바다를 안전하고 편리한 공간으로 만드는 기술, 기존에 없던 기술을 만들고 있는 만큼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