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중앙은행의 독립성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한 미국
미국 중앙은행 역사에서 폴 볼커는 큰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쟁과 오일쇼크를 겪었습니다.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통화량이 풀렸고, 석유 가격이 급격히 오르는 오일쇼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물가가 급상승했죠. 이에 폴 볼커는 연 11%대이던 금리를 20%까지 올리며 인플레이션을 꼭 잡겠다는 의지를 보였죠.정부 입장에서 볼커의 통화정책은 실업률을 높이고 경기를 악화시키기 때문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참모들은 폴 볼커를 그대로 두면 안 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하지만 지미 카터는 재선에 실패할 정도로 경기가 침체했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했습니다. 이어 로널드 레이건도 정책에 개입하지 않았죠. 이 같은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을 꼭 잡겠다’는 명확한 신호를 주어 13%대였던 물가 상승률이 1983년에는 3%대로 떨어졌습니다. 이후 미국은 안정된 물가를 바탕으로 1980년대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죠.
대통령이 통화정책에 관여한 터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무시했다가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 나라도 있습니다. 터키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는 만악(萬惡)의 부모’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와는 정반대 주장을 했습니다. 자신의 정책 논리를 반대하는 중앙은행장을 교체하고 연 19%이던 기준금리도 14%로 인하했습니다.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기준금리 인하로 시중에 통화량이 증가해 물가가 상승했습니다. 지난 1월 터키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48.69%나 급등한 게 그 결과죠. 터키 리라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외국인 자본이 유출됐습니다. 이에 따라 외환보유액은 바닥나고 국민은 금과 암호화폐를 선호하게 되었죠. 우리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국민 생활 안정을 위해 왜 중요한지 상반된 사례를 통해 알 수 있겠죠.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