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삼성동 하나금융 클럽원PB센터를 들어가자 전병국 클럽원 센터장(사진)이 ‘리그오브킹덤즈(LOKA)’를 하고 있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다중접속온라인(MMO) 게임이다. 옆 직원은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한 채 두 팔을 허우적댔다. 클럽원은 예탁자산 30억원 이상 초고액 자산가(VVIP)만 가입할 수 있는 PB센터다.

전 센터장은 “지난해 이 게임을 만든 회사를 탐방하고 와서 플레이투언(P2E·게임하면서 돈벌기)을 경험하고 싶어 직원들과 연맹을 만들었다”며 “여기가 제 왕국인데 오늘 NFT(대체불가능토큰)로 1000만원어치 땅을 질렀다(샀다)”고 했다. 직접 경험해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전 센터장이 이끄는 클럽원은 2017년 출범 이후 비상장사에 2조원을 투자했다. 지난해 59곳에 투자한 금액은 5900억여원. 국내 웬만한 벤처캐피털(VC)과 사모펀드(PE)를 뛰어넘는다. 이 중 26곳을 엑시트(자금회수)했는데, 손실을 낸 딜은 한 건도 없었다. 수익률은 260%였다.

▷비상장사 투자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비결이 무엇인가.

“첫 번째는 정보, 두 번째는 네트워크, 세 번째는 바게닝 파워(교섭력)다. 하루에 보통 4개 딜을 살펴본다. 1주일이면 20개, 1년이면 1000개 이상의 딜을 분석하는 셈이다. 최고경영자(CEO)를 만나고, 본사를 방문하고, VC와 미팅도 한다. 검토한 1000여 개 딜 중 작년에 투자로 성사된 것이 57개니까 채택률이 6% 정도다. 채택되지 않은 나머지 94%도 계속 지켜보면서 업데이트한다. 비상장 투자를 한 6년간 5000~6000개 회사를 들여다봤다. 결국은 양이 질을 만든다.”

▷작년 가장 높은 수익을 낸 딜은.

“엑시트 모델인 △상장 △인수합병(M&A) △구주매각 중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은 상장이다. 작년 8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크래프톤이 그렇게 수익을 냈다. 2020년 5월 170억원을 투자해 1년여 만에 400% 이상을 벌었다.”

▷처음엔 선뜻 투자금을 모으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2015년엔 다들 비상장사는 리스크가 높다고 투자를 꺼렸다. 데스밸리(외부 자금을 유치하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는 상황)도 있었다. 20년 이상 브로커리지(주식위탁매매)를 하면서 깨달은 점은 주식은 개인투자자들이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는 거다. 2018년 공모주펀드는 1600개 중 12개만 수익률이 플러스였지만, 사모펀드는 1800여 개 중 81%가 수익을 냈다. 비상장 투자의 역설은 가장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스크가 높은 초기 단계 기업부터 상장이 임박한 프리 IPO(상장 전 투자유치) 단계 기업까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쌓아가는 ‘신생-발전-완성 피라미드’라는 단계적 투자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직접 비상장기업에 투자하는 건 어떤가.

“잘못되면 상장사 주식은 하한가에 팔 수 있지만 비상장사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된다. 비상장사 1~2곳에 투자해 승부를 보려면 아예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일부 성공 사례만 좇으며 대박을 꿈꾸다간 필패한다. 우리도 30여 명이 달라붙어 꼼꼼하게 살피며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버틴다. 2조원의 바게닝파워도 있다.”

▷올해 투자 시장은.

“작지만 강한 기업들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느냐에 달렸다. 카카오와 네이버에서 시작해 쿠팡 마켓컬리 무신사 토스 등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이 나오고 있다. 비전펀드를 포함해 세쿼이아 등 세계적인 펀드들이 국내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있는 것도 좋은 현상이다.”

▷유망 투자처는.

“올해 투자 방향은 △의식주 영역의 버티컬 커머스 △지식재산권(IP) △크립토파이낸스(암호화폐금융) 등 세 가지로 잡고 있다. 버티컬 커머스의 사례는 직방이 대표적이다. 가상 오피스인 ‘메타폴리스’도 운영하고 있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한국의 왓차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이 많아지면서 IP 비즈니스가 급부상 중이다. 디지털화 비율이 미국은 10%, 일본은 20%밖에 안 된다. 대개 웹툰이 배경이어서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다. 크립토파이낸스는 메타버스 시대가 오고 탈중앙화된 시장(디센트럴랜드)가 보편화됐을 때를 대비한 투자다. 이때 거래할 화폐가 있어야 한다. 근간은 NFT(대체불가능토큰)다.”

▷암호화폐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건가.

“코인에 투자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가상자산 거래소와 코인은 크립토파이낸스에서 가장 작은 시장이다. 코인을 보관하는 개인 지갑이 있다면 금융행위를 해야 하는 여신과 수신, 비트코인을 기반으로 한 담보대출이 필요하다. 지난해 캐나다와 미국에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가 상장됐는데, 암호화폐를 활용한 금융상품이 출시되면서 관련된 상품을 거래하는 자산운용시장도 확대될 거다. 굉장히 빠르고 급진적으로 올 건데, 크립토파이낸스를 선점하느냐에 따라 극명하게 성패가 갈릴 것이고 완전히 다른 세계가 올 것이다. 세쿼이아가 투자한 NFT의 가치평가 모델을 만든 NFT뱅크가 대표적이다. 앞으로 제2의 네이버와 카카오가 크립토파이낸스 분야에서 반드시 나올 거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