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이 절대강자 자리를 지켜온 국내 택배 시장에 균열 조짐이 일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급증했던 택배 물량 증가율이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줄어든 가운데 e커머스(전자상거래) 강자인 쿠팡이 제3자 물류 시장에 직접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어서다.

CJ대한통운은 지난해 택배단가를 올리며 수익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폈지만 이로 인해 점유율이 떨어지는 상황을 맞고 있다.

택배 둔화·쿠팡 약진에 ‘폭풍전야’

11일 물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택배 물량 증가율은 10% 안팎으로 20.7%를 기록한 2020년의 절반 수준에 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3분기까지 전년 대비 8.8% 늘어나는 데 그쳤다. 물량은 2020년 33억7400만 박스에서 37억 박스 안팎으로 늘었지만 성장세가 꺾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수년간 급성장한 이후 성숙기에 접어든 국내 e커머스 시장의 변화와 택배사를 이용하지 않고 자체 물류망을 이용하는 쿠팡의 약진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쿠팡의 ‘로켓성장’이 지속될수록 택배업계의 일감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나금융투자는 지난해 쿠팡의 온라인 시장 점유율을 전년보다 6%포인트 늘어난 약 20%로 전망했다.

쿠팡의 약진은 당장 택배업계 1위 CJ대한통운에 위협이 되고 있다. 미래 사업가치의 바로미터인 성장성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2020년 업계 평균을 웃도는 성장률을 보였던 대한통운은 지난해 정반대 상황을 맞았다. 2020년 물량이 전년 대비 28.1% 늘어난 데 비해 지난해 1~3분기 증가율은 5.3%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택배단가를 2193원으로 약 10% 올린 뒤 고객 일부가 롯데, 한진 등 2~3위권 업체로 빠져나간 것으로 풀이된다. 2020년 50%를 웃돌던 CJ대한통운의 택배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48%대로 하락했다.

쿠팡 택배 본격화하면 ‘제2의 배달전쟁’

쿠팡은 3자 물류 강화를 위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자체 주문량을 소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조원을 투자해 구축한 물류망을 다른 e커머스 사업자의 물품을 배송하는 데도 활용하겠다는 계산이다. 한국 가구의 70%가 쿠팡 물류센터 반경 10㎞ 내에 있다는 점을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는 쿠팡은 이미 물류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를 통해 택배 사업자 자격을 취득해놨다. 풀필먼트 서비스를 수익 모델로 삼고 있는 아마존처럼 조만간 택배 사업을 본격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입점 업체에 로켓배송과 같은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트배송’을 시행하고 있는 쿠팡은 최근 3자 물류 인력을 대거 채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물류망을 지금도 확충하고 있는 쿠팡이 3자 물류를 위해 쿠팡카를 수만 대 준비해놨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쿠팡은 “급증하는 자체 물량을 소화하기에도 바쁜 상황”이라며 신중한 입장이다.

새로 진출한 시장에서 정면충돌을 마다하지 않는 쿠팡과 맞닥뜨린다면 CJ대한통운은 전에 없던 ‘초격전’에 휘말릴 수 있다. 후발주자로 배달 앱 시장에 뛰어든 쿠팡이츠가 대규모 투자를 앞세워 배달의민족을 위협한 장면이 택배업계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쿠팡의 3자 물류 시행을 CJ대한통운의 최대 리스크로 지목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9%가량 늘어난 3550억원 안팎으로 추정됨에도 주가는 지지부진한 흐름이다. 52주 최고가인 19만4500원에서 35% 하락한 12만6000원에 11일 거래를 마쳤다. 업계 관계자는 “갈 길 바쁜 CJ대한통운이지만 빨리 뛰기는커녕 노조 파업에 발목이 잡혀 있다”며 “물류 자동화 등을 통해 레벨업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