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차량 전동화, 제대로 가고 있는가
지난해 11월 스티브 키퍼 제너럴모터스(GM) 수석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이 내한해 ‘GM 미래성장 미디어 간담회’를 개최하고 한국 시장에 대한 GM의 미래 전략과 계획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10종의 전기차를 한국 시장에 내놓을 계획을 발표하면서도, 한국에서는 전기차 생산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매우 충격적인 내용이다. 차량 전동화의 핵심에 순수 전기차(BEV)를 위치시키고 2025년까지 30종의 BEV를 개발해 판매 비중을 40%까지 높이며, 2035년에는 내연기관차 생산과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GM이다. 그러나 이런 글로벌 생산 계획에 한국GM은 제외된 것이다.

차량 전동화의 핵심인 배터리의 핵심 파트너사가 LG에너지솔루션이고, 모터 핵심부품을 LG마그나와 협력하며, 반도체를 비롯해 통신·인포테인먼트용 전기전자 부품이 한국에서 생산 조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GM을 BEV 생산기지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는 개발 및 물류의 이점을 상쇄하는 반대급부가 있다는 논리다. BEV 생산기지가 갖춰야 할 노동생산성이 낮고, 게다가 노사문제로 인한 생산계획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측면을 고려해 보자. 최근 르노삼성은 르노와 중국 지리가 공동 개발한 BEV를 부산공장에서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미·중 무역갈등 속에서 중국산 BEV 수출이 어려워지자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르노그룹이 한국을 고려한 것이다. BEV에 대한 단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기지로 한국을 고려한다는 논리다. 개발과 부품 조달 면에서의 고려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현대자동차는 어떤가? 지난해 12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중대 결단을 내려 연구개발 조직의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38년간 운영한 엔진개발센터를 없애고 엔진 개발 조직을 전기차 개발 조직으로 바꿨다. 아울러 파워트레인이라는 엔진-미션 구동체계에 대한 용어를 쓰지 않도록 했다. 사실 이런 변신은 GM에서 3년 전 꾀한 바 있다. GM은 2016년 파워트레인이라는 용어 대신 프로펄션(propulsion·추진) 시스템이라는 용어를 쓰도록 했으며, 2018년 11월에는 이마저도 차량 개발 조직에 통합하면서 완전한 BEV 회사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두 회사의 변신에는 커다란 차이가 숨어 있다. 전동화 이면에는 엔진을 모터로 대체한다는 엄청난 변화가 있다. 이는 내연기관 차량을 구성하는 부품의 3분의 1가량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엔진은 사라지고, 미션은 싱글 기어로 단순화되며, 엔진 작동과 연관된 흡기·배기·연료 시스템이 없어진다. 따라서, 부품 산업계의 커다란 변화는 물론이고 차량 조립과 관련한 프로세스가 단순화된다는 뜻이다. 자연히 기존 생태계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GM은 2018년 조직 변화 발표와 더불어 전 세계 7개 공장을 폐쇄하면서 미국 내에서 6000명을 감축하고 인원 15%를 구조조정했다. 여기에는 경영진 25% 축소도 포함됐다.

분명 차량 전동화는 자동차산업 100여 년 역사 속에서 가장 큰 변화이자 도전이다. 이런 변화의 핵심에는 뼈아픈 생태계의 대변신이 자리잡아야 한다. 기존 내연기관으로 조성된 생태계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것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전동화로의 신속한 전환은 필수다.

문제는 속도다. 전동화의 핵심에 있는 배터리, 모터, 전력전자부품, 전력반도체,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체계적 육성과 지원이 필요하다. 왜 GM과 르노, 심지어 현대차까지도 BEV의 생산 기지로서 한국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는지 통렬한 성찰이 필요하다. 내연기관차 시절 한국이 글로벌 생산기지로 잘나갈 때 가지고 있던 경쟁력이 노동생산성, 생산기술력, 기술개발력, 그리고 부품업체 생태계임을 명심해 전동화 관점에서도 계속 유효한지 살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부족한 점이 있다면 어떻게 극복하고 동기 부여를 할지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짚어보고 나서야 할 시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