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급 고용직으로 그 업무가 너무나 철저하게 무의미하고 불필요하고 해로워서, 그 직업의 종사자조차도 그것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직업 형태" 행동파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 런던정경대(LSE) 교수가 저서 '불쉿 잡'(Bullshit Job)'에서 제시한 '불쉿 직업'의 정의다.
'빌어먹을', '엉터리' 등의 의미로 쓰이는 비속어 '불쉿'을 붙인 이런 직업의 예시로 인사 관리 컨설턴트,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터, 홍보 조사원, 금융 전략가, 기업 법무팀 변호사 등을 언급한다.
2011년 월가 점령 시위 때 '우리가 99%'라는 구호를 창시한 그레이버 교수가 별세하기 2년 전인 2018년에 발간한 이 책이 민음사에서 번역 출간됐다.
저자는 '불쉿 직업'의 유형을 다섯 가지 비유로 제시한다.
상사나 관리자를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제복 입은 하인', 타인을 공격하는 요소가 있으며 누군가가 채용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직업인 '깡패', 문제를 덕트테이프 같은 임시방편으로 때우는 업무만 하는 '임시 땜질꾼', 실제 목표를 이루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서류를 양산하는 '형식적 서류 작성 직원', 이런 불쉿 업무를 만들어 배분하는 중간 관리자 '작업반장' 등이다.
저자는 이런 직업들은 계속 증가하며 쓸모 있는 일을 하는 직업에서도 점점 '불쉿 업무'의 분량이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행정 업무의 증가에 시달리는 교육자, 근무 시간의 대부분을 서류 작업과 소모적 회의로 보내고 있다고 불평하는 간호사 등을 예시로 제시한다.
'불쉿 직업'의 증가 원인을 저자는 금융자본주의의 성장에서 찾는다.
좌파든 우파든 일자리 창출과 고용 증대를 목표로 하는 정부의 입장도 한몫을 거든다고 지적한다.
이런 '불필요한 노동자 고용'은 고전 자본주의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저자는 현재 자본주의 경제의 한 측면을 '경영 봉건제도의 성장'으로 파악하면서 이런 현상을 설명한다.
실질적인 상품 생산과 유통, 유지·관리보다는 할당과 분배를 기초로 하는 정치·경제적 구조는 경영 계층제의 꼭대기로 더욱 많은 부가 가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구의 1%가 한 사회의 부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을 때 어떤 일이 유용하고 중요한지 결정하는 것도 그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책은 노동의 사회적 가치와 그 대가로 받는 금액의 반비례 관계의 문제도 지적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는 어떤 직업이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 확실할수록 정당한 보수를 받을 확률은 더 낮아진다는 일반 원칙이 있는 것 같다"며 간호사나 쓰레기 수거 요원, 기계 정비공, 소방관 등이 만약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저자는 '불쉿 직업' 증가에 대한 해결책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을 언급한다.
다만, 저자는 "특정한 해결책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기본소득에 관한 책으로 취급되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자신을 무정부주의자로 규정하는 저자는 "국가가 완전히 해체되기를 기대하며 국가에 더 많은 권력을 주는 정책에는 관심이 없다"면서도 "그런데 이것이 기본소득 운동을 지지할 수 있는 이유"라고 밝힌다.
저자는 "기본소득 운동은 국가 권력의 거대한 팽창으로 보일 수 있는데, 아마 그 돈을 만들고 분배하는 것이 국가이기 때문일 것"이라며 "하지만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