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환 현대모비스 사장(왼쪽)과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이 지난 28일 인도네시아 정부와 배터리셀 합작공장 투자협약을 체결한 뒤 협약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현대차 제공
조성환 현대모비스 사장(왼쪽)과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이 지난 28일 인도네시아 정부와 배터리셀 합작공장 투자협약을 체결한 뒤 협약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현대차 제공
인도네시아는 연간 자동차가 약 100만 대 팔리는 동남아시아 최대 시장이다. 경제성장률이 연 평균 5%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자동차 보급률은 인구 1000명당 80대 정도다. 인근 국가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다. 현재보다는 미래 성장 가능성이 더 큰 시장으로 꼽혀온 이유다.

이런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은 지금까지 쉽사리 도전장을 내밀지 못했다.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브랜드가 시장을 장악해왔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판매량 1~5위는 모두 일본 브랜드이고, 이들의 시장 점유율을 합하면 85%가 넘는다.

日 장악한 인도네시아 시장에 도전장

현대차그룹이 인도네시아 시장 공략에 시동을 걸었다. 전기자동차를 앞세워 일본 브랜드의 아성을 무너뜨리겠다는 전략이다. 2019년 인도네시아에 완성차 공장을 착공한 데 이어 29일에는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배터리셀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두 공장이 모두 정상 가동되면 연간 25만 대의 완성차와 15만 대 분량의 전기차 배터리가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된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 28일 화상으로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조성환 현대모비스 사장과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 바흐릴 라하달리아 인도네시아 투자부 장관이 협약식에 참여했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셀 합작공장 설립에 총 11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투자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일정 기간 법인세 및 합작공장 운영에 필요한 설비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주고, 전기차 관련 세제 혜택을 강화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은 합작법인의 지분을 50%씩 보유한다. 현대차그룹에서는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기아 등이 주주로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자동차 및 배터리 분야의 1등 기업이 힘을 모아 해외에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합작공장의 위치는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동남쪽으로 65㎞가량 떨어진 카라왕 산업단지다. 1700여 개 공장이 들어선 이 산업단지는 인도네시아 산업 중심지의 하나다. 현대차 완성차 공장이 건설되고 있는 브카시 델타마스 공단과의 거리는 10㎞ 정도에 불과하다. 인근에 공항과 항구가 있어 교통과 물류 인프라도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남아 공략 전초기지 구축

합작공장은 2024년부터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셀을 양산할 계획이다. 현재 일반적으로 쓰는 리튬이온배터리(니켈, 코발트, 망간 등이 함유)에 알루미늄을 추가한 고성능 배터리셀이 이 공장에서 생산할 주요 제품이다. 배터리셀 소재로 알루미늄을 추가하면 출력은 커지고, 화학적 불안정성은 낮아진다는 게 LG에너지솔루션 측 설명이다.

합작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셀은 현대모비스를 통해 모듈로 제작되고, 현대차와 기아의 전용 플랫폼 전기차 등에 탑재된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셀 합작공장 완공을 계기로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전기차 시장 공략에 본격 나설 계획이다.

인도네시아는 최근 전기차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완성차 및 배터리 공장이 있으면 다른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기도 쉽다. 아세안은 완성차에 대한 역외 관세가 최대 80%에 달해 국내 공장 등에서 생산해 수출할 경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대신 아세안자유무역협정 체결국 간에는 부품 현지화율이 40% 이상인 경우 무관세 혜택이 주어진다.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한 배터리셀을 장착한 전기차는 다른 동남아 국가에 대부분 무관세로 팔 수 있다는 의미다.

산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과 LG그룹의 미래차 협업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6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회동이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두 사람은 당시 미래차 관련 협력 범위를 넓히기로 의견을 모았다. 합작법인 설립도 이때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도병욱/김형규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