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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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에 신고한 암호화폐거래소만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특정금융정보법의 유예기간이 3개월 가량 남은 가운데 정부·금융기관에 비상이 걸렸다. 신고요건을 갖추지 못한 일부 중소 암호화폐거래소들이 거래소 명의 계좌가 아닌 불법 차명계좌로 투자자들의 돈을 받아놨다가 유예기간이 끝날 즈음 잠적하는 ‘먹튀’ 우려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이들 거래소는 금융사의 계좌 폐쇄 조치가 잇따르자 다른 금융사에서 차명계좌를 발급받는 ‘메뚜기’ 식으로 영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은 30일 제1차 가상자산 유관기관 협의회를 열고 가상자산사업자들의 위장계좌 전수조사에서 확인된 불법 거래유형을 공개했다. FIU에 따르면 실명입출금계좌를 사용하지 않는 상당수 가상자산사업자(암호화폐거래소·수탁업자·지갑업자 등)가 사업자명을 바꿔 위장 계좌를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위장계열사나 법무법인, 임직원 명의의 차명 계좌를 운영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상적으로 은행과 실명입출금계좌 협약을 맺은 거래소들은 거래소 이용자마다 개인 계좌를 별도로 개설해 거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협약을 맺지 못한 중·소규모 거래소들은 거래소 명의의 계좌로 거래소 이용자가 돈을 입금하면, 거래소 사이트에서 해당 금액만큼의 원화 포인트를 올려주고 해당 포인트로 암호화폐를 살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당국이 우려하는 것은 거래소 명의 계좌가 아닌 위장계좌를 이용하는 거래소들이 이용자들의 돈을 갖고 잠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잠적할 것이 아니라면 불법 차명계좌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금융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특금법 유예기간이 끝나는 9월24일 이전까지는 불법 차명계좌를 이용한 거래소 영업이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FIU 관계자는 “금융사를 옮겨다니면서 위장계좌를 열고 이를 중단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위장계좌로 돈을 받아놨다가 9월 이후 잠적을 감출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FIU는 경찰 등에서 수사를 받고 있는 가상자산사업자가 사업자명을 바꿔 새로운 위장 계좌를 만들어 거래소에 이용하는 경우도 파악됐다고 밝혔다.

한편 은행 실명입출금계좌를 보유 중인 국내 4개 암호화폐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는 암호화폐를 자금세탁에 활용하는 범죄 혐의자들이나 의심거래 관련 정보를 한데 모아 관리하는 ‘합작법인’을 만들기로 했다. 특금법 시행령에 따라 내년 3월25일부터 도입되는 ‘트래블룰’ 규제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다. 트래블룰이 부과되면 업비트를 이용하는 A 법인이 코인원을 이용하는 B 법인에게 암호화폐를 전송하면 각 거래소들은 해당 거래내역을 수집할 의무가 생긴다. 시가 100만원 이하의 암호화폐를 전송하는 경우에는 트래블룰이 적용되지 않는다.

박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