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OS) 윈도95의 등장은 정보기술(IT) 시장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텍스트 기반의 도스(MS-DOS)에서 ‘클릭과 드래그’ 기반의 윈도 OS가 대세로 자리하며 ‘PC 대중화’ 시대가 시작됐다.

컴퓨터 언어 관련 지식이 없어도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이른바 ‘노코드 플랫폼’이 또다시 IT업계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과거 그래픽 기반의 OS 등장이 충격을 선사했듯, 간편 조작을 기반으로 기존 프로그램 개발 풍토를 바꿔가고 있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자동화가 중시되는 인공지능(AI) 모델 구현에도 쓰임새가 늘고 있다.

클릭해서 끌어다 놓으면 ‘OK’

컴퓨터 몰라도 AI·앱 만든다…IT업계 '노코드 플랫폼' 바람
9일 IT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공개된 LG CNS의 노코드 무료 플랫폼 ‘데브온 NCD’의 다운로드 수는 최근 2100회를 넘어섰다. NCD는 버블, 에어테이블 등 주요 노코드·로코드 플랫폼과 함께 개발자 구인난의 대응책으로 떠오르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드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132억달러(약 14조8000억원)이던 관련 시장 규모는 2025년 455억달러(약 50조9800억원)를 기록할 전망이다.

데브온 NCD는 ‘플로 차트’와 비슷한 개념을 활용해 개발 기간을 대폭 줄여주는 점이 눈에 띈다. 플로 차트란 시스템 설계 과정에 포함되는 필수 요소다. 각종 도형을 이용해 시스템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오게끔 그리는 기법이다. 사용자는 데이터 타입 지정, 함수 내 변수 지정 등 도형이 가진 기본 특성만 숙지하면 된다. ‘퍼즐 맞추기 게임’과 비슷하다.

예컨대 1부터 임의의 수 N까지를 모두 더하는 계산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플랫폼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부터 N까지를 더하려면 변수 N이 1보다 큰지 판단하는 수식이 필요하다. 숫자들을 반복해서 더해주는 기능도 있어야 한다. 코딩에서는 이를 조건문, 반복문 등 공식으로 구현한다. 복잡한 영어와 숫자 조합이 수반된다.

반면 노코드 플랫폼에선 간단한 클릭과 블록을 이어 붙이는 것만으로도 같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사용자는 플로 차트를 바탕으로 한 알고리즘 구성에 집중하면 된다.

유정수 전주교육대 컴퓨터교육과 교수는 “노코드 플랫폼은 인력이 모자란 스타트업에서 개발 방식이 공개된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비전공자에게 코딩에 대한 흥미를 심어주는 교육을 하는 등 쓰임새가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AI도 조립해 쓰는 시대 성큼

노코드 플랫폼은 ‘AI 시대’를 맞아 더욱 각광받고 있다. 특히 개발 방식이 복잡한 기계학습 분야에서 다양한 플랫폼이 출시되고 있다. 구글과 애플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플랫폼 생태계 형성에 앞장서고 있다.

구글의 ‘오토ML’은 클라우드를 통해 딥러닝 모델을 제공한다. 개발자나 실무 사용자는 인공신경망 메커니즘이나 생성 방법에 대해 알 필요 없이, 원하는 모델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애플의 ‘코어ML’과 ‘크리에이트ML’은 자연어 처리, 이미지 분류 등 광범위한 기능을 지원한다. 애플의 iOS를 기반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사용자가 원하는 기계학습 모델을 커스터마이징해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AI 노코드 플랫폼의 강점은 작업 절차를 단축한다는 것이다. 통상 AI 모델을 개발할 때는 데이터 수집과 준비 단계도 까다롭지만, 모델을 개발하고 훈련해 평가하는 단계가 가장 어려운 일로 꼽혔다. 이 때문에 AI 개발자들은 통상 공개된 모델 코드(오픈소스)를 모아 자신들의 개발 방향에 맞게 ‘튜닝’하는 작업을 거치는데, 이때 복잡한 코딩이 수반된다. 노코드 플랫폼은 이런 과정을 자동화해 개발을 손쉽게 해준다.

이지형 성균관대 AI학과장은 “데이터와 AI 모델 구축 준비는 AI 개발의 시작점에 해당하는 일”이라며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했다는 가정 아래 각종 툴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기본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