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유난 떤다', '예민하게 군다'고 핀잔을 듣는 일이 적지 않았으나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이 벌어진 뒤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홍씨는 "개인정보가 적힌 문서를 그냥 버리기 찝찝해 1년 전부터 파쇄기를 쓰고 있다"며 "이전엔 스스로도 너무 예민한가 싶어 말을 꺼내기 어려웠는데, 이번에 지인들에게 말하자 다들 '어디서 살 수 있냐'며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살인사건 피의자 김태현(25)이 피해자가 무심코 노출한 집 주소를 이용해 주거지에 찾아간 사실이 알려지자 일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정보 유출을 막는 방법이 여성들의 큰 관심사가 됐다.
10일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택배 송장이나 영수증 등 개인정보가 포함된 문서를 없애려고 문구점 등에서 소형 문서 파쇄기를 구매했다는 '인증' 글과 택배 송장에 적힌 내용을 지우는 방법을 공유하는 글 등이 다수 올라와 있다.
예컨대 '아세톤이나 향수를 뿌리면 송장 내용을 지울 수 있다'거나 '송장 위에 덧칠해 내용을 지우는 롤러 스탬프를 사용하는 것이 더 확실하다'는 식이다.
서울 중구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노모(26)씨는 "김태현 사건을 계기로 가족과 함께 산다고 범죄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최근엔 택배를 받을 때 '곽두팔' 같은 가명을 사용하고 직접 수령하는 대신 무인택배함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 공개된 개인정보를 지우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직장인 김모(28)씨는 대학생 때부터 지인들과 교류를 위해 사용하던 SNS 계정을 사실상 폐쇄하기로 했다.
김씨는 "그간 잘 사용하지 않다가 오랜만에 들어가 보니 출신학교를 비롯해 거주하는 동네 사진까지 너무 많은 정보가 공개돼 있어 깜짝 놀랐다"며 "해코지하려고 마음먹고 내 정보를 캐면 너무 쉽게 알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에서 혼자 사는 강모(26)씨도 "김태현이 피해자와 교제하던 사이도 아니고 몇 번 만난 게 전부였다는 사실을 듣고 누구라도 스토킹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메신저 프로필 사진 같은 아주 작은 정보라도 낯선 이에게 사생활이 공개되는 게 무서워졌다"고 했다.
김태현 사건이 전형적인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보여준 탓에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높아진 것으로, 이를 해소할 사회제도와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스토킹 등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불안감을 개인 처신 문제로 놔둘 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나 국가가 나서서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올해 9월 시행될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 조항을 보완하고, 지자체는 여성 1인 가구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