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대선 넘어 한국사회 전반 바꿀까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으로 촉발된 부동산 문제가 국정과 사회의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민심의 분노를 맞닥뜨린 문재인 대통령은 사태 2주 만인 16일 첫 사과를 하면서 남은 임기 정책역량을 '부동산 적폐 청산'에 집중하겠다고 언급, 청와대를 넘어 공직사회 전체에 메스를 대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여기에 여야가 국회의원 전수조사, 특검, 국정조사까지 추진키로 하면서 당분간 땅 투기 문제는 국정의 중심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안은 4·7 재·보궐선거와 대선 구도는 물론, 선출 권력과 재벌, 부유층 등 기득권층을 직접 사정권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불공정의 가장 중요한 뿌리인 부동산 적폐를 청산한다면 투명한 사회로 가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공공기관 전체에 대한 근본적 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단 문 대통령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이번 사태에 대한 국민의 분노지수를 고려하면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투기실태를 파헤치는 작업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이런 움직임은 청와대, 국회,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이번에 문제가 된 LH를 넘어 전체 공공기관으로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또 3기 신도시뿐만 아니라 모든 투기성 땅 거래가 여론의 심판대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본인의 거래는 물론 친족의 거래까지 문제가 될 수 있어 공직사회에서도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LH 사태가 김영삼(YS) 정권 때 있었던 공직자 재산공개 파동을 연상시킨다는 관측도 있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에 자신과 가족의 재산을 공개했고, 이에 따라 정부·여당의 고위직 인사들의 재산공개가 이뤄져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 여파로 박준규 당시 국회의장이 의장직과 함께 의원직까지 내놓았고 김재순 전 국회의장 등 여당 인사들의 사퇴가 잇따랐다.
여기에 박양실 보건사회부 장관, 허재영 건설부 장관 등도 부정축재 시비에 휘말려 경질됐다.
당시 김 대통령이 남긴 "돈과 명예를 함께 누릴 생각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말과 김재순 전 의장이 의원직에서 물러나며 남긴 '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먹는다)이라는 사자성어가 한동안 회자됐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고위직 인사들이 연루될 경우 1993년 재산공개에 버금가는 충격을 공직사회에 안길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의도에서도 당분간 모든 이슈의 중심에 '땅 투기' 문제가 자리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여야는 이날 특검 도입에 합의했다.
여야 모두 최대한 빨리 특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구체적인 법안 내용이나 특별검사 추천을 두고 여야의 물밑 힘 싸움이 팽팽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특검과 별도로 추진되는 국회의원 부동산 거래 전수조사도 중요한 뇌관이다.
국민들의 이목이 워낙 집중된 만큼 전수조사 결과,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 민심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부동산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릴 만큼 땅에 대한 우리 국민 특유의 정서와 맞물려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줬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안이 4·7 재보선 판세는 물론 차기 대선 구도도 좌우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만일 여권 고위 인사들이 땅 투기 의혹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분노로 민심이 급속하게 이탈, '정권 심판론'에 힘이 실릴 수 있다.
반대로 문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땅 투기라는 적폐를 발본색원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확보한다면 오히려 문 대통령 임기 후반 국정장악력과 개혁 동력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할 가능성도 열려있다.
야당 역시 유력 대권주자 자신이나 배우자, 친인척, 측근이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휘말린다면 정권교체 노력에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별개로 부동산 적폐 청산 노력이 정치문화 전반을 바꾸는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감도 감지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부동산을 통한 부정 축재 문제에 정치권이 둔감하게 반응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사태 이후 관가나 정치권에서 청렴성이나 도덕성에 대한 잣대가 한층 엄격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