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베이커휴즈, 프랑스 AXA그룹 등 글로벌 기업 18개사가 러시아 주도 노드스트림2 천연가스관 건설사업에서 발을 뺀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의 에너지 시장 영향력이 높아질 것을 우려한 미국이 노드스트림2 사업 참여 기업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영향이다.

2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지난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보고서는 노드스트림2 사업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알린 18개 기업 명단과 함께 미 행정부가 이들 기업에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노드스트림2는 러시아와 서유럽을 잇는 1230㎞ 길이 가스관이다.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기업 가즈프롬이 주도해 짓고 있다. 완공되면 이를 통해 러시아 가스를 발트해 해저를 거쳐 독일 등 서유럽에 보낼 예정이다. 러시아는 2015년 노드스트림2 사업을 시작했다. 당초 2019년 말 가스관을 개통할 예정이었다.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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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스트림2는 완공까지 약 160㎞를 앞두고 완공률 93%에서 사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2019년부터 완공률이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미국이 공사 참여 기업을 제재하겠다고 위협하자 스위스 민간기업 올시즈가 공사를 멈추고 철수했기 때문이다. 발트해 일대 덴마크 인근을 제외하면 대부분 공사가 완료됐다.

미국은 러시아가 유럽에 대해 에너지 영향력을 늘릴 것을 우려해 제재 카드를 내세워 각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EU는 이미 연간 천연가스 소비량의 3분의 1 이상을 러시아에서 들여온다. EU 27개국 중 14개국은 천연가스 수요의 50%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한다. 러시아는 이를 통해 역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2006년 이후 유럽과 관계가 악화할 때마다 네 차례에 걸쳐 유럽행 가스관을 잠그는 식으로 ‘실력 행사’를 하기도 했다.

작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행정부는 제재법을 손봐 노드스트림2 견제에 나섰다.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은 "미국은 기업이 러시아 가스관 사업을 지원하거나 투자하는 일을 용납할 수 없다"며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중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미국에선 올해 1월1일부터 노드스트림2 관여 기업에 제재를 부과하는 법이 발효됐다. 트럼프 전 행정부는 퇴진 직전일인 지난달 19일 미 적성국 제재대응법(CAATSA)에 따라 노드스트림2 사업에 참여한 러시아 선사 KVT-RUS와 소속 선박 한 척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도 노드스트림2를 놓고는 트럼프 전 행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노드스트림2는 유럽에게 나쁜 거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6일엔 미 국무부가 KVT-RUS 제재 등을 재확인하는 보고서를 미 의회에 제출했다. "노드스트림2에 관여하는 기업·단체에 대한 조사를 계속할 것"이라고도 공언했다.

이번 명단에 나온 18개사 중 여러 곳은 앞서 사업에서 중도하차한다고 밝힌 기업들이다. 노르웨이 인증기관 노르셰베리타스(DNV GL), 스위스 보헙기업 취리히보험, 독일 뮌헨재보험, 독일 엔지니어링기업 빌핑거 등이다. 일본 손해보험업계 1위기업 도쿄해상홀딩스가 운영하는 도쿄마린킬른, 영국 아스펜매니징에이전시 등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의 최근 압박은 러시아 견제와 함께 자국 천연가스를 유럽에 판매하려는 물밑 작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앞서 “미국의 위협은 유럽에 천연가스 판매를 늘리려는 열망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세계 최대 가스 생산국인 미국은 액화천연가스를 유럽에 수출해 유럽에서 러시아 가스의 '대안' 역할을 하고 싶어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노드스트림2 사업에 맞서 이스라엘이 주도하는 이스트메드 가스관 건설 사업도 지원하고 있다. 이스트메드 가스관은 이스라엘 해안에서 키프로스섬을 거쳐 그리스까지 이어진다. 완공되면 천연가스를 연간 120억㎥가량 수송할 수 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