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초상집 개?
지금까지 인류를 위해 살았던 수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가 본받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런 인물이 있다면 그저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정말 존경한다면 그들과 같은 인물이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

《공자가어》라는 책에는 공자를 ‘초상집 개’라고 한 표현이 있다. 세계 4대 성인 가운데 한 사람인 공자를 이렇게 황당하게 표현했다니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 전말은 이렇다.

공자가 제자들과 길을 걷다가 제자들을 잃고 혼자 성문 밖에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제자인 자공에게 “마치 초상집 개와 같은 모습을 한 사람이 성문 밖에 서 있다”고 말해줬다. 자공은 들은 대로 공자에게 일러줬다. 그런데 공자는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운 얼굴로 “초상집 개와 같다고 말한 것은 참 그럴듯하구나”라고 했다.

공자의 모습을 ‘초상집 개’와 같다고 표현한 것은 누가 들어도 기분 나쁜 말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이에 대해 화를 내기보다 오히려 너그럽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자를 왜 초상집 개라고 표현했을까? 초상집 개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초상 난 집에는 상주들이 슬픔에 빠져 통곡하고 있을 것이고, 조문객이 줄지어 다녀갈 것이다. 게다가 상례를 돕는 많은 친척과 이웃이 분주히 오갈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 집에서 기르던 개는 누가 챙길 것인가? 아무도 개에게 밥을 주거나 돌보는 사람이 없을 것은 자명하다. 결국 굶주린 개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기웃거리고 먹이를 찾았을 것이다. 공자는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아무도 공자를 돕거나 공자를 등용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공자는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군주들을 찾아다녔다. 이런 모습이 바로 초상집 개와 같은 것이다.

일반 사람들이 만약 이런 평가를 들었다면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신에 대해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라며 웃어넘겼다. 우리 삶이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자신만을 위하는 삶에서 탈피해 많은 사람과 함께 행복한 세상에 사는 방법을 강구하고 실천해야 한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먼 미래를 위해 도모할 줄 안다면, 공자와 같은 상갓집 개가 돼도 좋다는 생각이 어리석은 것일까?

인류가 생긴 이래 수많은 사람이 상갓집 개처럼 살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행복은 아마 그런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추앙하고 존경하며 심지어 신앙처럼 믿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서 한 단계 올라가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도 그들처럼 되거나 그런 삶을 살려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우리가 그들을 추앙하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