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칠드런 오브 맨'으로 본 인구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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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노믹스
'無출산 재앙' 덮쳐
경제 붕괴된 2027년 영국
생산가능인구 급감 韓
'저출산 난제' 풀 열쇠는
'無출산 재앙' 덮쳐
경제 붕괴된 2027년 영국
생산가능인구 급감 韓
'저출산 난제' 풀 열쇠는
“전 세계는 오늘 ‘지구의 마지막 아기’ 디에고 리카르도의 죽음에 충격에 빠졌습니다. 18년4개월의 생애 끝에 삶을 마감한 ‘베이비 디에고’는 인류가 맞이한 불임이라는 재앙의 상징이었습니다.”
2027년 영국 런던, 시민들은 화면 속 청년의 사진을 보며 오열한다. 인류는 2009년 이후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원인불명의 재앙을 맞았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다가오는 멸종 앞에 인류는 무너져간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뉴욕 한복판에 핵폭탄이 터져 폐허로 변했고, 잠시 등장하는 서울은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긴 상태다. 신에게 용서를 비는 신흥 종교 집단이 창궐하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 테오(클라이브 오언 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부와 국가 기능이 유지된 영국의 공무원이다. 그는 한때 사회운동가로 활동했지만 지금은 친구와 마약을 즐기며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느 날, 테오의 전처이자 테러단체 지도자인 줄리안(줄리앤 무어 분)이 테오를 찾아와 흑인 소녀 ‘키’를 영국 밖으로 옮기는 작전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한다. 키는 약 20년 만에 인류에서 최초로 아이를 임신한 여성이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은 ‘그래비티’와 ‘로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 받은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2006년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절망적인 세상을 그린 디스토피아물로, 저출산을 넘어선 ‘무출산’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 처참한 인류의 생활을 담아냈다. 사실상 경찰국가로 변한 영국은 정부의 철권통치로 최소한의 치안을 유지하지만 경제는 붕괴에 이르렀다. 생기를 잃은 길거리에는 쓰레기와 낙서가 가득하고, 시민들은 시동도 제대로 걸리지 않는 노후화된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런던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슬럼이 된 도시의 빈민들이 지나가는 차량을 약탈하기 위해 달려든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대부분이 노인이다.
칠드런 오브 맨 속 상황은 더 심각하다. 현실에서는 평균수명 연장과 개발도상국들의 높은 출산율로 세계 인구가 아직 증가하고 있지만, 영화 속 지구는 사망자 한명 한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을 정도로 인류 소멸 속도가 빠르다. 경제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출생은 전무하다.
전통 경제학은 생산의 3대 요소로 노동력과 토지, 자본을 꼽는다. 안타깝게도 모든 인간이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산활동에 유의미하게 기여할 수 있는 만 15세에서 64세 사이의 사람을 인구경제학에서는 ‘생산가능인구’로 정의한다. 전체 인구가 늘더라도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한다면 오히려 생산가능인구가 짊어져야 하는 비용은 증가한다는 것이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핵심이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특히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그림1>에 따르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이미 2017년에 3757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로 돌아서 2047년에는 2562만 명으로 쪼그라든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 국가는 경제의 성장 잠재력마저 타격을 받는다. 한국의 경제성장 둔화 원인을 분석할 때 고령화가 최우선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1일 발표한 ‘한국경제 보고서’에서 한국의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노인인구가 지난해 22명에서 2060년에는 80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로 인해 향후 40년 동안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1.2%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사회의 생산뿐 아니라 수요 측면에서도 재앙이다. 이들은 생산에 기여할 뿐 아니라 가장 왕성하게 소비하는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지난해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소비지출은 <그림2>에서처럼 40대에 정점을 찍고, 60대부터는 20대보다 낮은 수준으로 추락한다. 나아가 고령층은 고정 소득이 적고, 남은 기대수명도 짧아 저축률 역시 낮다. 이는 경제 전체의 투자 위축과 장기 성장성 악화에 영향을 미친다.
생산 인구가 줄어드는데 부양 인구는 늘어나는 교착 상태에 빠진 영화 속 영국 정부는 가장 극단적인 해결책을 꺼내든다. 국민에게 자살약을 배급하고, 방송 매체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자살약의 효과를 홍보한다. 이는 강제적으로 사망률을 끌어올려 고령화의 부담을 해소하려는 전략이다.
영화 속 영국은 두 가지 선택 모두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출산은 불가능하고,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난민은 시민들의 불안과 반감 속에 사회에 편입되기보다 수용소로 몰려 제거된다.
키의 존재는 영화가 제시하는 디스토피아의 해답이다. “세상은 끝났다”며 절망하던 테오는 임신한 키의 배를 보면서 삶에 대한 희망을 찾는다. 테오와 일행의 숱한 희생 끝에 키는 무사히 건강한 딸을 출산한다. 난민을 학살하던 영국의 군인들도, 생존을 위해 테러와 분쟁을 이어가던 저항군도 아기의 모습을 보고 모든 싸움을 멈춘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키와 딸은 죽어가는 테오의 도움으로 인류를 되살리기 위해 연구하는 학자들의 배에 올라탄다. 배의 이름은 투모로(내일)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
2027년 영국 런던, 시민들은 화면 속 청년의 사진을 보며 오열한다. 인류는 2009년 이후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원인불명의 재앙을 맞았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다가오는 멸종 앞에 인류는 무너져간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뉴욕 한복판에 핵폭탄이 터져 폐허로 변했고, 잠시 등장하는 서울은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긴 상태다. 신에게 용서를 비는 신흥 종교 집단이 창궐하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 테오(클라이브 오언 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부와 국가 기능이 유지된 영국의 공무원이다. 그는 한때 사회운동가로 활동했지만 지금은 친구와 마약을 즐기며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느 날, 테오의 전처이자 테러단체 지도자인 줄리안(줄리앤 무어 분)이 테오를 찾아와 흑인 소녀 ‘키’를 영국 밖으로 옮기는 작전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한다. 키는 약 20년 만에 인류에서 최초로 아이를 임신한 여성이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은 ‘그래비티’와 ‘로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 받은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2006년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절망적인 세상을 그린 디스토피아물로, 저출산을 넘어선 ‘무출산’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 처참한 인류의 생활을 담아냈다. 사실상 경찰국가로 변한 영국은 정부의 철권통치로 최소한의 치안을 유지하지만 경제는 붕괴에 이르렀다. 생기를 잃은 길거리에는 쓰레기와 낙서가 가득하고, 시민들은 시동도 제대로 걸리지 않는 노후화된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런던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슬럼이 된 도시의 빈민들이 지나가는 차량을 약탈하기 위해 달려든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대부분이 노인이다.
인구 감소보다 두려운 ‘생산가능인구 감소’
인류가 저출산과 고령화를 두려워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인구경제학에 따르면 고령화는 출산율 저하와 사망률 둔화라는 두 현상의 산물이다. 워싱턴대 보건계량평가연구소에 따르면 세계의 합계출산율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이 시기에 함께 진행된 평균수명 연장으로 선진국들은 급격하게 인구구조가 늙어가기 시작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워싱턴대 연구진은 세계 인구가 2064년에 97억 명으로 정점을 찍고 하강 곡선을 그릴 것으로 전망한다.칠드런 오브 맨 속 상황은 더 심각하다. 현실에서는 평균수명 연장과 개발도상국들의 높은 출산율로 세계 인구가 아직 증가하고 있지만, 영화 속 지구는 사망자 한명 한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을 정도로 인류 소멸 속도가 빠르다. 경제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출생은 전무하다.
전통 경제학은 생산의 3대 요소로 노동력과 토지, 자본을 꼽는다. 안타깝게도 모든 인간이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산활동에 유의미하게 기여할 수 있는 만 15세에서 64세 사이의 사람을 인구경제학에서는 ‘생산가능인구’로 정의한다. 전체 인구가 늘더라도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한다면 오히려 생산가능인구가 짊어져야 하는 비용은 증가한다는 것이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핵심이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특히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그림1>에 따르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이미 2017년에 3757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로 돌아서 2047년에는 2562만 명으로 쪼그라든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 국가는 경제의 성장 잠재력마저 타격을 받는다. 한국의 경제성장 둔화 원인을 분석할 때 고령화가 최우선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1일 발표한 ‘한국경제 보고서’에서 한국의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노인인구가 지난해 22명에서 2060년에는 80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로 인해 향후 40년 동안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1.2%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사회의 생산뿐 아니라 수요 측면에서도 재앙이다. 이들은 생산에 기여할 뿐 아니라 가장 왕성하게 소비하는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지난해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소비지출은 <그림2>에서처럼 40대에 정점을 찍고, 60대부터는 20대보다 낮은 수준으로 추락한다. 나아가 고령층은 고정 소득이 적고, 남은 기대수명도 짧아 저축률 역시 낮다. 이는 경제 전체의 투자 위축과 장기 성장성 악화에 영향을 미친다.
생산 인구가 줄어드는데 부양 인구는 늘어나는 교착 상태에 빠진 영화 속 영국 정부는 가장 극단적인 해결책을 꺼내든다. 국민에게 자살약을 배급하고, 방송 매체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자살약의 효과를 홍보한다. 이는 강제적으로 사망률을 끌어올려 고령화의 부담을 해소하려는 전략이다.
고령화 해결 ‘희망’은 출산율 개선·포용적 이민
지금의 대한민국, 그리고 영화 속 영국과 같은 나라들이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출산율을 끌어올리거나, 포용적인 이민정책으로 외국인을 자국 경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1990년대까지 유럽을 대표하는 저출산 국가였던 프랑스는 복지 확대를 통해 합계출산율을 유럽연합(EU) 내 최고 수준인 1.9명으로 끌어올렸다. 1960년대부터 출산율이 하락세인 미국은 이민자 문호 개방 덕에 지난 20년간 생산가능인구가 14%(2673만 명) 증가했다.영화 속 영국은 두 가지 선택 모두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출산은 불가능하고,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난민은 시민들의 불안과 반감 속에 사회에 편입되기보다 수용소로 몰려 제거된다.
키의 존재는 영화가 제시하는 디스토피아의 해답이다. “세상은 끝났다”며 절망하던 테오는 임신한 키의 배를 보면서 삶에 대한 희망을 찾는다. 테오와 일행의 숱한 희생 끝에 키는 무사히 건강한 딸을 출산한다. 난민을 학살하던 영국의 군인들도, 생존을 위해 테러와 분쟁을 이어가던 저항군도 아기의 모습을 보고 모든 싸움을 멈춘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키와 딸은 죽어가는 테오의 도움으로 인류를 되살리기 위해 연구하는 학자들의 배에 올라탄다. 배의 이름은 투모로(내일)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