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조스트라다무스(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에 빗댄 표현)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SNS에서는 정권에 맞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던지는 조언은 물론 성추행을 한 후 피해자 탓을 하는 '2차 피해'에 대한 사회적 당부까지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교훈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다.

조 전 장관은 7년 전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총장의 대치를 예언이라도 한 듯 2013년10월 트위터에 "윤석열 찍어내기로 청와대와 법무장관의 의중은 명백히 드러났다. 수사를 제대로 하는 검사는 어떻게든 자른다는 것. 무엇을 겁내는지 새삼 알겠구나!"라고 썼다.

조 전 장관은 2014년 고위공직자 출신으로 국회의장까지 지낸 70대 남성이 골프장에서 20대 초반 여성 캐디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찌르는 등 성추행을 저지르고 “손녀 같고 딸 같아 귀여워서” 그랬다고 해명했다는 것을 비판한 한 언론의 '개저씨(개와 아저씨의 합성어)' 기사의 링크와 함께 "성추행을 하면서 피해자 탓을 하는 '2차 피해'를 범하는 '개'들이 참 많다"고 비판했다.

해당 기사인 경향신문 기자칼럼에는 '개저씨'들의 만행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어린 인턴의 엉덩이를 움켜쥔 성추행이 드러나 낙마한 전 청와대 대변인, 여제자를 성추행하고 군색한 변명 끝에 잘린 모 대학 성악과 교수, 연구생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희롱 발언과 성추행을 일삼아 해임된 모 대학 교수, 길 위에서 음란행위를 하다가 여고생의 신고로 붙잡혀 낙마한 모 검찰지검장을 비롯해 근래 벌어진 사건들은 헤아리기가 무서울 정도다. 한국 사회권력의 핵심을 차지한 ‘아저씨’들은 기회만 되면 훌러덩 체면을 벗고 짐승이 되길 주저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수치심에 침묵할 테니 자기조절 따위는 거추장스러웠을 것이다.

칼럼은 "성에 관한 범죄는 대개의 경우 ‘성’은 가해자가 추구하는 부차적 이익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권력’의 쾌감이다. 피해자가 전전긍긍하며 반항하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상위 권력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같은 피해자의 '2차 피해'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성추행으로 입은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모시던 박 시장을 향해 고소장을 제출하는 용기를 낸 전 비서는 여권 극렬 지지자들로부터 댓글 테러를 당했다.

이들은 "고소 여성을 반드시 색출해 응징하겠다"면서 신상털이도 주저하지 않는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모든 죽음은 애석하고 슬프다”면서도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 서울시청 직원이 벌써 ‘신상털이’와 같은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다며 조문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같은 당 심상정 대표도 조문을 마치고 “고인의 영면을 기원한다”면서 “이 상황에서 가장 고통스러울 수 있는 분이 고소인이라 생각한다. 이 상황이 본인의 책임 때문이 아니라는 걸 꼭 생각해주셨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2차 가해 신상털이를 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드린다”라고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최민희 전 의원은 12일 오전 페이스북에 “박 시장의 조문은 자유”라며 “정의당은 왜 조문을 정쟁화하냐. 시비를 따질 때가 있고 측은지심으로 슬퍼할 때가 있는 법이다. 뭐 그리 급하냐”고 비판했다.

그러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최 전 의원이 오히려 이 문제를 정쟁화하고 있다며 쏘아붙였다. 그는 “정치인들이 우르르 몰려가 조문을 하는 게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도 못 참을 일이냐”며 “그새를 못 참고 기어이 페미니즘의 의제를 정치적 의제로 바꿔놓으려 한다”고 최 전 의원을 저격했다.

그는 최 전 의원을 향해 “지금 이게 당신 딸이 사회에 나가면 곧바로 마주칠 현실”이라면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 평소에 페미니스틀 자처하던 시장도 이런 짓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 두 의원은 당신 딸이 살아갈 이 사회의 모습이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부디 그 사회에는 당신 같은 인간들이 없거나 혹은 적기를 바란다”고 꼬집었다.

시민운동가, 여성운동가로 칭송받던 박 시장이 정말 '개저씨'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성추행 혐의가 사실인지 무고인지 경찰의 수사가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 당사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며 수사는 강제 종료됐다. 이해찬 당대표는 성추행 의혹을 묻는 기자에게 "예의를 지켜라"라고 분노했다. 이같은 당당함은 "안희정, 오거돈에 이어 박원순까지 민주당 내에서 성폭력 혐의 끝에 세명째 시장직을 비우게 됐는데 당대표라는 사람이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지는 못할망정 버럭 화를 낸다"며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맑은 분이셔서 세상을 하직할 수 밖에 없었다"고 누군가는 박 시장을 추모했다. 하지만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 때문에 혹시라도 소중한 명예가 더러워질까 우려돼 하나 뿐인 목숨을 버리며 "다들 안녕"을 외치진 않는다. 우리 사회가 박시장 전 비서의 입장에서 그가 어쩌면 평생 겪어야만 할 '2차 피해'의 의미를 한번쯤 더 숙고해 봐야 하는 이유다.

"용기를 낸 당신은 잘못이 없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