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논술형 수능,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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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식 수능에 논술형 추가는 '개악'
'생각하는 힘'에 더 많은 점수를 부여
비판적·창의적 사고력 키우게 해야
이혜정 < 교육과혁신연구소장 >
'생각하는 힘'에 더 많은 점수를 부여
비판적·창의적 사고력 키우게 해야
이혜정 < 교육과혁신연구소장 >
지난해 11월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주요 대학의 정시 확대 방침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2028년부터 논술형 수능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현 수능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 방향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새로운 평가 혁신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보여서 반가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수능과 내신이 둘 다 객관식 상대평가인 나라는 한국뿐이다. 수능을 객관식이 아니라 논술형 절대평가로 바꾸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그런데 교육당국이 논술형 수능의 방향을 엉뚱하게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4월 23일~5월 15일 전국 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서·논술형 대학수학능력시험 체제 도입 방안’에 대해 설문 조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설문 내용이 기존 객관식 수능은 그대로 유지한 채 논술형 수능을 추가하는 방안으로만 구성돼 있다. 객관식 수능 자체를 폐지할 생각은 어디에도 없다.
그간 각계 지성들이 지적해 온 핵심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지식을 집어넣기만 하는 교육을 넘어 스스로의 생각을 꺼내는 교육으로 평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존 객관식 수능을 그대로 둔 채 논술형을 추가하는 식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그것은 개혁은커녕 개악이라고 할 수 있다. 객관식 시험의 폐해는 단순한 암기력 측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아닌 출제자의 생각을 맞혀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데 있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라는 책을 보면 서울대 재학생들은 객관식 시험을 거의 치르지 않는데도 자기 생각이 아니라 교수의 생각을 쓸수록 학점이 높았다. 논술형이라는 시험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역량에 점수를 줄 것인지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은 기존 정답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 제기할 수 있는 환경에서만 길러질 수 있다. 객관식 수능을 그대로 두면서 논술형 문제를 추가한다면 여전히 객관식에서 변별이 이뤄질 것이고, 논술 시험에서조차 정답을 찾아야 하는 패러다임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그러면 교실 수업은 여전히 바뀌는 것이 없을 것이고, 논술 사교육은 또다시 폭증할 것이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할 시대적 역량은 여전히 기를 수 없게 될 것이다. 개선이 아니라 개악인 이유다.
지난달 대구교육청이 ‘IB(국제 바칼로레아) 프로그램 현장 안착 지원 방안 연구’ 보고서를 공개했다. IB는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전 과목 토론·논술형 교육 프로그램 및 대입 시험이다. 보고서에 IB를 한 학기 동안 적용한 시범학교 구성원 대상의 설문 결과가 공개됐는데 학부모와 학생, 교사 대부분이 IB 교육이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을 향상시키고 학력 저하 우려가 없다며 IB의 교육적 효과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가 IB 교육에는 사교육이 거의 효과가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대다수 학생이 여전히 사교육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의 사교육은 현재의 IB 수업에 도움이 되는 사교육이 아니라 기존의 문제풀이 영어·수학 학원이었다. 학교 수업에 전혀 도움 안 되는 사교육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언젠가 볼 대입 수능 때문에 불안해서라고 응답했다. 결국 우리 교육은 교실 수업이 아무리 바뀌어도 입시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난해 제주교육청과 대구교육청은 IB 본부와 ‘IB 한국어화 협약’을 체결하고 2024년도 대입부터 전 과목 논술형 시험을 한국어로 치르기로 확정했다. 적은 수험생으로 시작하겠지만 분명 전 과목 논술 입시의 공신력 있는 채점 시스템으로 운영될 것이다. 이런 경험을 참고하지 않고 그저 기존 수능에 논술을 추가하는 수준으로 새로운 수능의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논술형 수능은 정해진 정답을 고르는 패러다임을 그대로 둔 채 문제 형태만 바꾸는 식으로 개발하면 안 된다. 제발 영국의 에이레벨,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 IB 등 세계 대입 시험 문제를 살펴보고 정책 방향을 잡도록 하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4월 23일~5월 15일 전국 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서·논술형 대학수학능력시험 체제 도입 방안’에 대해 설문 조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설문 내용이 기존 객관식 수능은 그대로 유지한 채 논술형 수능을 추가하는 방안으로만 구성돼 있다. 객관식 수능 자체를 폐지할 생각은 어디에도 없다.
그간 각계 지성들이 지적해 온 핵심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지식을 집어넣기만 하는 교육을 넘어 스스로의 생각을 꺼내는 교육으로 평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존 객관식 수능을 그대로 둔 채 논술형을 추가하는 식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그것은 개혁은커녕 개악이라고 할 수 있다. 객관식 시험의 폐해는 단순한 암기력 측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아닌 출제자의 생각을 맞혀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데 있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라는 책을 보면 서울대 재학생들은 객관식 시험을 거의 치르지 않는데도 자기 생각이 아니라 교수의 생각을 쓸수록 학점이 높았다. 논술형이라는 시험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역량에 점수를 줄 것인지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은 기존 정답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 제기할 수 있는 환경에서만 길러질 수 있다. 객관식 수능을 그대로 두면서 논술형 문제를 추가한다면 여전히 객관식에서 변별이 이뤄질 것이고, 논술 시험에서조차 정답을 찾아야 하는 패러다임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그러면 교실 수업은 여전히 바뀌는 것이 없을 것이고, 논술 사교육은 또다시 폭증할 것이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할 시대적 역량은 여전히 기를 수 없게 될 것이다. 개선이 아니라 개악인 이유다.
지난달 대구교육청이 ‘IB(국제 바칼로레아) 프로그램 현장 안착 지원 방안 연구’ 보고서를 공개했다. IB는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전 과목 토론·논술형 교육 프로그램 및 대입 시험이다. 보고서에 IB를 한 학기 동안 적용한 시범학교 구성원 대상의 설문 결과가 공개됐는데 학부모와 학생, 교사 대부분이 IB 교육이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을 향상시키고 학력 저하 우려가 없다며 IB의 교육적 효과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가 IB 교육에는 사교육이 거의 효과가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대다수 학생이 여전히 사교육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의 사교육은 현재의 IB 수업에 도움이 되는 사교육이 아니라 기존의 문제풀이 영어·수학 학원이었다. 학교 수업에 전혀 도움 안 되는 사교육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언젠가 볼 대입 수능 때문에 불안해서라고 응답했다. 결국 우리 교육은 교실 수업이 아무리 바뀌어도 입시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난해 제주교육청과 대구교육청은 IB 본부와 ‘IB 한국어화 협약’을 체결하고 2024년도 대입부터 전 과목 논술형 시험을 한국어로 치르기로 확정했다. 적은 수험생으로 시작하겠지만 분명 전 과목 논술 입시의 공신력 있는 채점 시스템으로 운영될 것이다. 이런 경험을 참고하지 않고 그저 기존 수능에 논술을 추가하는 수준으로 새로운 수능의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논술형 수능은 정해진 정답을 고르는 패러다임을 그대로 둔 채 문제 형태만 바꾸는 식으로 개발하면 안 된다. 제발 영국의 에이레벨,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 IB 등 세계 대입 시험 문제를 살펴보고 정책 방향을 잡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