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좋아한 어머님 뜻 따라 2011년 붕어빵 장사 나선 뒤 기부 시작

그 뜻을 이어받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
원광대학교 앞에서 붕어빵과 와플을 파는 김남수(63)씨는 연말이면 현금 365만원이 든 봉투를 들고 전북 익산시청을 찾는다.
하루에 만원씩, 한해동안 모은 성금을 전달하고는 "내년에 또 오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시청을 떠난다.
그러기를 햇수로 벌써 9년째.
남모르게 했던 선행은 널리 알려져 이제 그는 익산 대학로의 유명 인사가 됐다.
김씨가 과거 출연했던 방송을 본 외국인 유학생들이 "어? 붕어빵 아저씨다"라며 다가와 손 흔들어 인사할 정도다.
찬바람에 빨갛게 익은 두 볼이 아릴 정도로 추운 겨울날. 코끝을 간질이는 붕어빵 냄새를 따라간 가게에서 만난 김씨는 해묵은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30여년 전 전주로 내려와 누나의 짜장면 가게에서 일을 배웠다.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시내에 음식점을 차리고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언제나 신선하고 푸짐한 상을 내놓은 덕에 가게는 날로 번창했고, 몇 해 지나지 않아 그는 전주 시내 중심가에 레스토랑과 노래방 등 사업장 3곳을 가진 '사장님' 됐다.

극심한 불경기에 소비가 얼어붙으면서 경영난에 시달리던 그의 가게는 헐값에 남의 손에 넘어갔고 모아놓은 재산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빈털터리가 된 그는 낙담할 법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일용직부터 다시 시작했다.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지하 보도에 노점상을 운영하며 재기를 꿈꿨다.
그러다가 2000년 초반부터 노점에서 판 달걀빵이 학생들에게 꾸준히 인기를 끌면서 풍족하지는 않지만, 가족이 먹고살 만큼의 돈을 벌게 됐다.
김씨는 이때부터 어머님의 가르침대로 주변과 나누는 삶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업장을 모두 날리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공사장을 전전하며 지낸 몇 년의 시간은 주변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당장 노점 수익의 일부를 전주사회복지관에 기부하고 배고픈 이웃에게 자신이 만든 빵과 재료를 나눠줬다.
"어려움이 있기 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스스로 깨우치면서 주변에 참 힘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문득 어머님이 항상 말씀하신 나누는 삶이 떠올라서 그것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죠"

2011년 익산의 대학로에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 붕어빵 장사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매년 100만∼200만원을 지역 청소년과 불우이웃을 위해 내놨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확산한 2015년에는 질병 예방에 써달라며 성금을 보탰고, 남북정상회담 때는 한반도의 성공과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붕어빵 판 돈 일부를 기부하기도 했다.
2016년부터는 매일 만 원씩을 모아 연말이 되면 365만원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이전보다 배 가까이 기부금을 늘린 탓에 부담이 커졌지만, 보람도 그에 비례해 늘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취재진이 가게를 찾아간 날도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분주하게 붕어빵과 와플을 구우면서 지난날을 이야기했다.
재빠르게 빵틀을 뒤집다가도 손님이 찾아오면 방긋 웃으며 온기가 가득 담긴 붕어빵 봉지를 두 손으로 건넸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를 꼬박 붕어빵 기계 앞에서 반죽과 씨름하는 게 고될 법도 하지만, 그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했다.
김씨는 "앞만 보고 달려갔던 지난날보다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는 지금의 삶이 더 가치 있고 행복합니다.
언제까지 붕어빵을 팔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을 하는 한은 계속해서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라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