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법은 지난해 10월18일 시행됐다.
감정 노동을 수행하는 대표 직군인 콜센터 상담직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은 어떻게 변했을까.
복수의 콜센터 상담사 근무 경험이 있는 이들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상급자에게 우울증 치료 사실을 알린 뒤 근무 중 휴식을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회사는 복지기관이 아니므로 사정을 봐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제25조의7에 따르면 사업주는 고객의 폭언·폭행 발생 시 업무를 일시 중단하거나 휴식 시간을 제공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사업주는 고객의 폭언·폭행 등으로 노동자의 건강장해가 발생하면 관련 치료와 상담도 지원해야 한다.
김씨는 "고객이 욕설하면 통화를 종료할 수 있는 '욕설 프로세스'가 있었지만 실효성이 약했다"며 "고객이 욕설해서 통화를 종료하면 상급자로부터 '욕설 프로세스를 악용한다'는 비난을 들었기 때문에 프로세스를 실행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우울증 발병 이후 휴식시간에 대한 반발, 실적 하락 등 이유로 상급자와 지속적으로 마찰을 겪었다"며 "고객으로부터는 '앵무새냐', '멍청한 X' 등 욕설을, 상급자에게선 회식자리에서 '남자에게 맞아본 적 있느냐'라는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토로했다.
사업주는 원청업체인 유통업체가 실시하는 근무 환경 조사에서 김씨를 배제해 부당 대우에 대한 의견도 개진하지 못하게 했다.
김씨 외 다른 콜센터 노동자들도 고객이 폭언했을 때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고객의 전화를 먼저 끊을 권리와 휴게시간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쇼핑몰 등에서 8년째 콜센터 상담사를 하는 정진희(가명·30대)씨는 "고객의 멸시와 폭언을 그대로 참아야 하는 게 가장 힘들다"며 "일부 공기업의 경우는 콜센터 상담사가 먼저 고객의 전화를 끊는 것이 가능하다고 들었지만 대부분 아웃바운드(상담사가 잠재적 고객에게 전화를 거는 텔레마케팅) 상담사에게 종료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말했다.
홈쇼핑 회사에서 2년 넘게 콜센터 상담원 업무를 해온 이선희(가명·40대)씨 역시 "업무 중 스트레스 등으로 휴게시간이 필요한데도 워낙 업무량이 많고, 쉬는 시간이 철저히 통제되기 때문에 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불만을 표했다.

주로 금융권 카드사에서 콜센터 상담사로 근무한 이진명(30대·가명)씨는 자신에게 지속적인 폭언과 무리한 요구를 일삼은 고객을 고소하기로 결심했다.
이씨는 "지난 8월 남편 카드 이용 내역을 알려 달라는 고객에게 본인 동의 없이 타인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거부했더니 지속적으로 전화해 반말로 폭언을 했다"며 "고객의 무시, 폭언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사측의 태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관리 매니저가 '상담사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감옥 가면 한 사람의 피해로 끝나지만 고객 민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회사 전체 피해로 이어진다'며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할 것을 지시했다"며 "사측이 고객의 무리한 요구와 폭언으로부터 상담사를 보호했다면 법적 조치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상담사들이 고객으로부터의 정신적 피해, 사측의 부당 대우 등으로 냉가슴을 앓는 것은 아직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사회에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10월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의 '2019년 감정노동 및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감정노동자 2천765명 중 70%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에 따라 보호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감정노동네트워크 한인임 정책팀장은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었으나 법 위반으로 신고된 건수는 9건뿐"이라며 "법을 지켜야 하는 주체인 콜센터 업계에서 법 시행과 내용을 잘 모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고용노동부의 적극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 이정훈 소장은 "하청업체가 원청업체와 재계약하기 위해서는 고객 민원이나 불만이 적어야 하므로 상담사에게 고객의 무리한 요구와 폭언을 수용할 것을 주문한다"며 "고객에게 무조건적인 친절을 베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인식을 확산하는 등 기업 문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 관계자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잘 이행될 수 있도록 캠페인과 관리 감독을 병행하고 있다"며 "4월에는 335개소 업체를 감독해 예방조치가 미흡했던 117개소에 시정조치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는 노사 모두의 의견을 수렴해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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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