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장비 맨 소방대원 101층 도달하는데 29∼44분
전국 첫 초고층 화재 매뉴얼 만들어 실전 연습 적용

초고층 건물 화재에서도 가장 생각조차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진다면 소방대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올해 말 준공하면 서울 롯데타워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 되는 부산 해운대 101층짜리 엘시티 건물에서 이런 상황을 가정한 소방훈련이 28일 펼쳐졌다.
전국에서 초고층 건물이 가장 밀집한 해운대구를 관할하는 해운대 소방서가 전국 최초로 마련한 '초고층 건물 화재 대응 매뉴얼'을 실전 연습에 처음 적용해 봤다.
이날 훈련은 "엘시티에서 불이 났다"는 긴급한 무전과 함께 시작됐다.
101층 건물 중 90층에서 불이 난 상황을 가정해 진화 훈련이 펼쳐졌다.
대응 매뉴얼을 보면 초고층 화재 시 건물 비상 전원과 소방시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여부에 따라 소방대원의 대처는 달라진다.

비상 전원과 소방시설이 먹통이 되는 경우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정석동 해운대소방서장은 "일반적인 불이나 자연 재난으로는 이런 상황까지 오기는 힘들지 않나 생각하고, 테러 등 최악의 상황이 오면 건물이 블랙아웃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입주민들은 각자 가까운 '피난층'으로 이동하면 화재를 피할 수 있다.
엘시티 101층 건물의 경우 48층과 76층, 20층 3곳에 피난층이 마련돼 있다.
피난층에는 주거 공간이 없고, 텅 빈 대피 공간에 연기를 막는 방화시설과 급기, 배기, 급수 소방 시설이 갖춰져 있다.
모든 것이 블랙 아웃된 상황에서는 소방대원도 맨몸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고가 사다리차를 이용하더라도 70m 높이가 한계인데, 엘시티의 경우 건물 높이가 410m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날 훈련은 대형 화재라 하더라도 블랙아웃이 오기까지는 실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이용해 소방대원이 피난층 3곳에 전진기지를 마련하고 발화 층에 접근하는 방식을 점검했다.
소방대원들은 송풍기와 물, 공기통, 소방호스를 신속하게 피난층으로 이송하고, 발화지점 2개 층 아래인 88층에 전진 지휘소를 꾸렸다.
각 전진기지에 배치된 소방대원들은 소방호스를 인근 전진기지까지 신속하게 연결했고, 1층에서 고성능 펌프차를 이용해 고층까지 물을 끌어 올렸다.
해운대 소방서 한 관계자는 "고성능 펌프차는 공기, 물, 폼으로 구성돼 있는데 수직으로 400m 이상 물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점진적 기지 구축 외에도 최악의 경우 소방대원이 1층부터 단숨에 101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에 대한 점검도 이뤄졌다.
나이대별로 구성된 8명의 대원이 20㎏ 장비를 모두 착용하고 출발했는데, 이날 50세 강동석 소방위가 29분 10초 만에 꼭대기에 가장 빨리 도달했다.

대원들은 오는 동안 2번의 산소통을 교체해야 했다.
강 소방위는 "94층에서 숨이 좀 찼다"면서 "누군가가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올라왔고, 꼭대기에 도착하고도 수색할 힘이나 여력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강성원(29) 소방사도 "올라와야 하므로 올라왔다"면서 "힘은 아직 남아있다"고 전했다.
이날 고층 건물 계단에서 송풍기를 이용해 연기를 밀어 올리며 소방대원들이 진화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훈련도 진행됐다.
해운대 소방서는 뉴욕 소방서의 사례를 참고해 송풍기 훈련을 실험해 본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대 소방서는 올해 6월 넉달간의 연구를 진행한 끝에 전국 첫 초고층 화대 대응 매뉴얼을 펴냈다.

이어 "오늘 훈련은 매뉴얼을 실제 훈련 현장에 적응해 보면서, 산소통은 얼마나 필요한지, 실제 등정은 가능한지 등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평가해보는 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