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빈의 구도심 한 바퀴…슈테판 성당·오페라하우스엔 낭만이 흐른다

매일 바뀌는 오페라하우스 무대
빈은 걷기 좋은 도시다. 트램이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도 잘 돼 있지만 구도심은 볼거리 먹거리가 가득해서다. 우뚝 솟은 슈테판 성당을 중심으로 빈 구도심을 둥글게 두른 링 거리(Ringstrasse) 안팎을 걷다 보면 바이올린과 아코디언뿐 아니라 하프와 클라리넷 거리 연주까지 즐길 수 있다. ‘빈에 왔으니 세계적인 공연장 오페라하우스나 뮤직베레인, 콘체르트하우스 같은 곳에서 공연은 한번 봐야지’ 했지만 미리 프로그램을 봐두지 않은 탓에 예약은 쉽지 않았다. 스탠딩석은 구할 수는 있었지만 현장에 2~3시간 전에 가서 기다려야 하고 2시간 가까운 공연을 서서 볼 자신은 없어 포기했다.

백스테이지 투어 후 주변에 있는 모차르트의 화려한 결혼식과 초라한 장례식이 치러진 성 슈테판 성당과 유럽을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한 곳인 미술사 박물관 등을 둘러본 뒤 다시 오페라하우스로 돌아왔다. 저녁 7시부터 시작하는 공연을 야외에서 실황 중계로 보기 위해서다. 10분 전에 도착했더니 이미 마련해 놓은 의자는 빈자리가 없었다. 의자 대신 앞쪽 바닥에 앉은 사람들 틈에 끼었다. 이날 무대에 올려진 공연은 1800년대 파리에서 초연된 발레 ‘해적(Le Corsaire)’이었다. 야외라 조금 산만하고 카메라를 통한 간접 관람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대형 스크린 아래로 간간이 오가는 사람들마저 공연의 일부 같은, 색다른 묘미가 있었다.
저녁식사는 길 건너편 가판대에서 산 핫도그로 대신했다. 커다란 빵에 소시지를 꽂아 넣은 간단한 구성이지만 고소한 빵의 풍미와 고기의 짭조름한 맛이 잘 어울렸다. 4~6월, 그리고 9월엔 50㎡ 크기의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을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도 등장한 오페라하우스의 멋진 야경은 덤이다. 오페라하우스의 스크린 실황 공연을 감상하고 싶다면 간단한 먹거리와 깔고 앉을 종이, 얇은 덧옷도 챙겨가는 게 좋겠다.
클래식 공연뿐 아니라 빈에선 매년 6월 말~7월 초에 국제 재즈음악 축제가 열린다. 1991년 시작된 세계 최대 재즈 페스티벌 중 하나다. 6월엔 팝, 재즈와 일렉트로닉 뮤직을 즐길 수 있는 유럽 최대 규모의 음악 페스티벌 ‘다뉴브 아일랜드 페스티벌’도 열린다.
커피는 음료가 아니라 문화
검색창에 ‘비엔나’를 치면 ‘소시지’와 함께 위쪽에 뜨는 연관 검색어는 ‘커피’다. 빈의 카페에 가서야 비로소 알았다. 빈에서 커피는 음료가 아니라 문화라는 것을. 합스부르크 왕가 시대부터 내려온 비엔나의 커피 문화는 2011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도 등재됐다. 빈 곳곳엔 카페가 있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커피를 마실 뿐 아니라 신문을 보고 대화한다. 일을 하거나 휴식을 취했고 토론을 하면서 식사도 한다. 주말이면 많은 시민은 카페에서 느긋하게 아침을 즐긴다. 그래서인지 빈 카페엔 반드시 한쪽에 신문과 잡지들을 모아놓은 게 눈길을 끈다. 1876년 문을 열어 학자, 작가들의 아지트로 불렸던 카페 센트럴엔 매일 22개 언어권의 신문 250부가 비치돼 있었다 한다.


비엔나의 커피 문화를 접해보려면 황실에 디저트를 납품하는 곳이었던 ‘더멜’이나 ‘자허 토르테’라는 초콜릿 케이크로 유명한 ‘카페 자허’를 들러보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단골 카페로 알려진 ‘란트만(Landmann)’이나 구스타프 클림트가 자주 갔다는 ‘카페 무제움(Cafe Museum)’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이렇게 유명한 카페들은 오후 시간에 가면 줄을 서거나 번호표를 받아야 할 정도로 대기 시간이 길 수 있다.
도시에서 키우는 벌
빈에서 가장 유명 건축물 중 하나인 쿤스트 하우스(Kunst Haus Wien)는 구도심에서 트램을 타고 15분 정도면 찾아갈 수 있다. 쿤스트 하우스는 오스트리아의 미술가이자 건축가인 훈데르트바서(1928~2000년)의 뮤지엄이다. 자연주의 철학을 갖고 있었던 그는 모든 공간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했다. 사람과 자연은 하나고 사람이 자연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남긴 건물 틈으로 나무가 삐죽하게 나와 있고 내부 바닥은 굴곡져 있다. 자연엔 직선이 없고 인간은 다른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야 함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쿤스트 하우스에서 훈데르트바서의 일생을 따라가며 그의 작품을 감상한 뒤 5분 정도 걸어서 이동하면 그의 철학이 묻어나는 또 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훈데르트바서가 시의 의뢰를 받아 건축 디자인에 참여한 영구임대주택이다. 1980년대에 지은 건물엔 50여 가구가 살고 있다고 했다. 그곳의 창문은 크기와 모양이 하나도 같은 게 없었다. 알록달록한 기둥과 벽면에 곳곳의 나무들로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용한 주택가였지만 이 영구임대주택 주변만 관광객들로 붐볐다. 빈 도심 한가운데, 자연과 어우러진 생활 자체를 작품으로 만든 예술가의 힘이었다.
와인을 생산하는 세계 유일 수도
빈에서 재배한 포도로 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와인을 마시기 위해 마지막날 저녁은 살짝 외곽으로 나갔다. 빈에서 차를 타고 30분 정도만 이동하면 푸른 포도밭 언덕을 가진 와이너리를 볼 수 있다. 빈 시내의 절반가량은 정원, 공원, 숲, 농지 등 녹색지대다. 그중 일부가 와이너리다. 빈은 세계에서 와이너리가 있는 유일한 수도이기도 하다. 2세기께 로마군이 주둔하면서 포도밭 경작을 시작했으니 그 역사가 길다. 빈 시내 포도밭 규모는 6.6㎢에 이른다. 대부분인 80%가 화이트 와인 품종이다.

와인 종류에 따라 10유로가량을 내고 테이스팅도 할 수 있다. 상큼한 첫맛으로 인기가 많은 ‘그뤼너 벨트리너(Gruner Veltliner)’도 한 병에 6.5유로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이곳의 와인 메이커 율리안 바이서는 “이곳에서는 1년에 25만 병가량을 생산하는데 대부분 5~6가지 포도 품종을 섞어서 만든다”며 “빈 와인 조합에서의 철저한 검사로 품질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술을 파는 곳이어서 술은 테이블로 와서 주문받지만 슈니첼아니 소시지, 족발과 튀김 요리 등 안주는 직접 카운터 쪽으로 가서 주문해야 한다. 화이트 와인 덕에 기름기 있는 음식들도 느끼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와인과 함께하는 기분 좋은 저녁식사는 더디게 지는 초여름의 해처럼 긴 여운으로 남았다.
빈(오스트리아)=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여행 정보

쉔부른궁전이나 벨베데레궁전, 미술사박물관 등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오디오가이드를 신청해 듣는 게 좋다. 오디오가이드를 빌릴 때는 여권이 필요하고 개인 이어폰을 갖고 가는 게 편하다. 오페라하우스, 무지크페라인, 콘체르트하우스 등에서는 매일 공연이 열리지만 공연장 사이트에 접속해 미리 예약해야 원하는 공연을 일정에 맞게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