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FT·日 경제주간지 등
수사 중인 내용 상세히 보도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현지시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측근인 정현호 삼성전자 사장이 증거 인멸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요지의 기사를 주요 뉴스로 다뤘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이 부회장의 경영권을 다지기 위해 삼성바이오가 저지른 분식회계 혐의를 정 사장이 숨기거나 축소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삼성전자 임직원 5명과 삼성바이오 및 삼성바이오에피스 임직원 3명 등 8명이 구속됐고 분식회계 규모가 39억달러에 이른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계열 주간지인 닛케이 아시안 리뷰도 지난 7일 ‘삼성 핵심 경영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삼성 경영진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삼성바이오 경영진뿐 아니라 삼성가(家) 오너인 이 부회장을 포함한 삼성전자 경영진에 대한 검찰 수사 상황을 상세히 담았다.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해외 기업이나 투자자, 주주들은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뒤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삼성전자도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느냐”, “이 부회장도 수사 대상이냐”고 문의한다는 게 삼성 측의 설명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구속된 이후 마치 삼성전자가 분식회계를 한 것처럼 보도되고 있어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애플 등 해외 경쟁사 일부 직원이 의도적으로 검찰 수사 사실을 영업에 활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50년 쌓아온 평판 추락 위기”
삼성 경영진은 삼성바이오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회계 처리 문제로 시작된 논란이 삼성전자 등 주력 계열사로 불똥이 튀는 현상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삼성바이오 사태가 삼성전자가 지난 50년 동안 쌓아온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점에서다. 삼성바이오의 지난해 매출은 5358억원으로 삼성전자(244조원)의 0.2%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헤지펀드로부터 또다시 공격받을 가능성도 거론한다. 이원일 제브라투자자문 대표는 “해외에선 이번 사태를 2001년 회계 부정으로 파산한 미국 엔론 사태에 비유하고 있다”며 “삼성전자 등 삼성 주력 계열사들이 해외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삼성전자가 100조원이 넘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반도체, 스마트폰, TV 사업에서 세계 1위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분식회계 혐의와 지배구조 문제 등으로 시장에서 저평가받고 있다고 이 대표는 지적했다. 그는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공격했을 당시 “다음 타깃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엘리엇은 2016년 삼성전자, 2018년 현대차그룹을 공격했다.
삼성전자의 해외 주주들도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외국계 대형 투자은행 고위 임원을 지낸 국내 모 운용사 대표는 “해외 주요 운용사들은 분식회계와 같은 중대 범죄 전력이 있는 경영진이나 오너가 있는 대기업에는 원칙적으로 투자할 수 없다”며 “재판을 통해 분식회계 혐의가 인정되면 상당수 운용사들이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 주식을 처분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검찰 수사가 장기화하면 수사 대상 기업의 해외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검찰 수사를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