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안 했으면요? 음, 아마 특전사에 들어갔거나 학군장교(ROTC)가 됐을걸요? 하하하.”뭐든 시원시원하다. 골프도 시원하게 치고 성격도, 말하는 품도 그렇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장타여왕 김아림(24·사진)이다. 말끝에 씩씩한 웃음이 자주 따라붙는다. 그러고 보니 별명이 ‘필드 위의 여전사’다. 1995년생 황금돼지띠인 그는 “골프가 너무 좋아서, 얼굴 찌푸릴 일이 별로 없다”며 다시 웃었다.비거리, 정타와 신체 밸런스 중요김아림은 투어 3년 차였던 지난해 생애 첫 승을 따냈다. 동갑인 김효주, 고진영, 백규정 등에 비해 다소 늦은 우승 신고다. 하지만 팬들은 늦깎이 챔프의 굴곡 많은 사연보다는 쭉쭉 뻗는 통쾌한 장타에 금세 꽂혀버렸다. 박성현, 렉시 톰슨, 에리야 쭈타누깐급이라는 평가도 많다.김아림의 지난 시즌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우드 티샷 비거리도 포함)는 259.18야드다. KLPGA투어 전체 1위. 하지만 그는 실제 20야드 안팎을 더 칠 수 있다. 최대치는 290야드를 훌쩍 넘는다. 드라이버 클럽헤드 속도는 시속 105~106마일로 찍힌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챔피언 짐 퓨릭이나 데이비드 헌, D A 포인츠 등이 이 속도 구간에서 클럽을 휘두른다.“정확도 없는 거리는 의미가 없다고 봐요. 스위트스폿에 정확하게 맞히는 ‘정타(正打)’가 그래서 더 중요해요.” 그가 클럽을 대략 70%의 힘으로 휘두르면서도 짱짱한 장타를 내는 첫 번째 요소다. 아직까지 자신보다 캐리 거리를 더 멀리 보내는 선수는 못 만난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장타 비결이 정타만은 아닐 터. 큰 키(175㎝), 긴 팔다리 이외의 요소로 그는 ‘신체 밸런스’를 꼽았다.“코치인 허석호 프로에게 배운 게 몸의 입체적인 균형이었어요. 코어 근육뿐만 아니라 동서남북, 상하좌우, 그러니까 몸의 앞뒤, 아래와 위, 왼쪽과 오른쪽 등 대칭점의 근육을 다 골고루 발달시켜야 한다는 거죠. 이후부터 통증도 많이 사라지고, 샷 비거리가 정확도와 함께 늘더라고요.”그는 어려서부터 수영 농구 태권도 등 뛰어노는 일을 워낙 좋아했다.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은 성격인데도 희한하게 운동만 하면 다른 성격이 나왔다. 열두 살 때부터 취미로 시작한 골프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다. 지겨울 법도 한 골프를 비시즌인 겨울에도 친구들과 신나게 친다니, 골프광이 따로 없다.“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 게 안 먹힐 때는 저도 많이 울었죠. 2부투어에서 3년을 보내고 있을 때 친구들이 우승하고 미국 무대로 진출하고 그랬으니까 …. 그런데도 한 번도 골프가 재미없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저 이상하죠? 하하!”‘골든슬래머’ 박인비와 대결, 터닝포인트‘골프여제’와의 맞대결은 골프 인생에서 터닝포인트가 됐다. 지난해 5월 두산매치플레이챔피언십 결승에서다. 그는 박인비(31)와 맞붙어 준우승에 그쳤다.“한창 샷이 올라오고 있을 때였고, 자신감도 컸을 때였는데 패했죠. 그런데 행복했어요. 나도 할 수 있겠구나, 미래가 더 확고해진 자신감이랄까.”TV로만 보던 박인비는 클래스가 달랐다. 김아림은 “1m나 되는 제 파퍼트에 오케이를 주더라고요. 너무 후한 거 아닌가 깜짝 놀랐는데, 곧바로 본인이 7~8m 정도 되는 버디 퍼트를 집어넣었어요. 박인비의 퍼팅 사정거리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퍼뜩 깨달았죠.”퍼트는 타고난 게 있다는 것도 어슴푸레 느꼈다. 그는 “타고난 게 부족한 나는 웨지라도 더 연습해야 한다는 걸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그는 2019년 시즌 첫 대회인 대만여자오픈에서도 막판까지 우승 경쟁을 했다. 하지만 우승컵은 대선배인 전미정(37)에게 내줬다.“퍼팅과 쇼트게임이 아직 멀었어요. 그렇다고 이 부분에 올인하지는 않을 거예요. 오히려 장점을 더 극대화해야죠. 비거리를 안정적으로 5~10야드 정도 더 늘리려고요. 그래야 쇼트게임 부담이 줄어들거든요.”김아림은 요즘 100야드 안팎의 어프로치샷에 집중하고 있다. 장타를 치고 난 뒤 그가 자주 남기는 거리다. 가장 중요한 건 색깔 강한 골프를 조금 더 성장시키는 일이다. 그는 “성적은 결과물이지 목표는 아닌 것 같다”며 “올해는 좀 더 매력 있는 ‘김아림표 골프’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김아림의 비거리 꿀팁손쓰지 말고 골반 사용…그립끝 수직으로 떨구는 연습해야“손으로만 속도를 내려고 하니까 오히려 거리가 안 나는 거예요.”김아림은 아마추어들이 많이 쓰는 손이 ‘비거리의 적(敵)’이라고 했다. 골반과 어깨가 회전해 손과 팔을 끌고 다녀야 하는데, 거꾸로 손과 팔이 몸통을 끌고 다녀 ‘브레이크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효율이 낮은 스윙일 수밖에 없다. 상체가 주도하는 잘못된 순서를 바로잡는 게 가장 먼저다.그다음이 ‘수직으로 그립 떨어뜨리기’다. 아마추어 대다수가 어려워하는 일. 이 또한 하체가 일하기 전 상체가 먼저 일하는 탓이다. 결국 그립은 저 혼자 사선으로 떨어지고 스윙 속도가 줄어든다는 설명이다.“그립 끝을 몸통의 오른쪽 땅바닥으로 낮게 떨굴수록 클럽헤드 스피드가 빠르게 나와요. 백스윙 자세로 어깨와 하체를 충분히 꼰 상태에서 두 손을 바닥으로 떨구는 동작을 많이 연습하면 효과가 좋습니다.”비거리에 필요한 또 다른 요소가 클럽이 지나다니는 공간이다. 다운스윙 때는 오른쪽 옆구리 공간이, 임팩트와 폴로스루 및 릴리즈 구간에서는 왼쪽 옆구리 공간이 충분히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다운스윙 때 프로들은 엉덩이를 타깃과 몸의 뒤쪽으로 움직이는 반면, 아마추어는 몸의 앞쪽으로 움직이려 한다”며 “이러면 원심력, 구심력이 줄어들고 스윙 공간도 좁아진다”고 지적했다.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경험이 많다 보니 새로운 환경에서도 쉽게 적응하는 것 같아요. 어린 친구들과 함께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네요.”2006년부터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에서 뛰며 25승을 거둔 전미정(37)은 방송 인터뷰에서 했던 말처럼 무대가 바뀌어도 여유가 넘쳤다. 타지에서 열린 대회에서 실수가 나와도 흔들리지 않고 선두를 풀어줬다 옥죄기를 반복했다. 관록을 앞세운 전미정은 20일 대만 가오슝의 신이GC(파72·6463야드)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대만여자오픈(총상금 80만달러)에서 12언더파 276타를 적어내며 우승을 차지했다. 2003년 제5회 파라다이스 여자 인비테이셔널 골프대회에서 투어 3승째를 거둔 뒤 무려 16년 만에 추가한 우승이다. 이 대회는 KLPGA와 대만여자프로골프협회가 공동 주관한다.전미정은 일본투어에서만 25승을 거둔 살아 있는 ‘레전드’다. 2006년 일본에 진출해 25승을 거뒀고 이번 대회에는 해외 투어 20승 이상 선수에게 주어지는 KLPGA투어 영구 시드를 받아 출전했다. 전지훈련 기간 컨디션 조절 차 이번 대회에 참가해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16년은 KLPGA투어 사상 가장 오랜 우승 공백 기간이기도 하다.전미정은 2라운드까지 단독선두였던 김아림(24)에게 2타 뒤져 있었으나 3라운드에서 무려 6타를 줄이는 집중력으로 기어코 동률을 이룬 채 최종 라운드에 들어갔다. 전반 9개 홀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는 사이 김아림이 버디와 보기를 맞바꿨다. 전미정은 8번홀에서 티샷이 오른쪽으로 밀렸고 더블 보기로 미끄러졌다. 9번홀에선 또 짧은 퍼트 실수가 나와 보기를 범했다. 김아림의 우승으로 무게가 기우는 듯했다.그러나 전미정은 11번홀부터 연속 버디로 잃었던 타수를 만회했다. 그러자 앞서던 김아림이 흔들렸다. 김아림은 10번홀에서 짧은 1m 파 퍼트를 놓치는 실수를 저질렀다. 김아림은 15번홀이 끝난 뒤 전미정에게 주먹을 내밀며 피스트 범프를 요청했으나 이를 보지 못한 전미정이 외면해 잠시 당황했다. 두 손을 공손히 모아 다시 피스트 범프를 요청해 전미정과 주먹을 가볍게 마주했다. 김아림은 이어진 16번홀에서 티샷이 감기며 숲으로 들어갔고 더블보기를 기록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피스트 범프 시도가 심리적 위축을 불러온 셈이 됐다.김아림은 10언더파 278타 공동 4위의 성적에 만족해야 했다. KLPGA투어 차세대 스타로 불린 그는 올해 첫 대회부터 명경기를 팬들에게 선물했음에도 지금까지 지적됐던 멘탈과 경기 운영 미숙은 숙제로 남았다.챔피언조 앞에서 경기한 김민선(24)은 마지막홀 버디로 한때 공동 선두에 올랐으나 전미정이 18번홀 버디를 낚으며 공동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챔피언조에 함께한 대만의 차이페잉도 18번홀 버디를 기록하며 마지막까지 전미정의 뒤를 쫓았지만 우승을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김소이(25)가 9언더파로 6위를 기록했다.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