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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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과 벅셔해서웨이, JP모간이 공동으로 설립한 헬스케어 합작사에 드디어 이름이 생겼다. 조직의 비전을 알리는 홈페이지도 공개됐다. 3개사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서 ABJ로 불리던 회사의 정체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합작사의 이름은 헤이븐(Haven·안식처)으로 결정됐다. 이들 기업이 지난해 1월 미국 의료 시스템의 비용을 낮추고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합작사를 설립하겠다고 밝힌 지 1년2개월 만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헤이븐의 비전은 초기 진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보험 적용 절차를 간소화하고, 쉽게 처방약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글 쓰는 의사’로 유명한 아툴 가완디(54)는 이 같은 과업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지난해 7월부터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일하고 있다.

글 쓰는 의사

가완디 CEO는 “헤이븐의 창업자들은 미국 의료 시스템에서 경험했던 높은 비용과 낮은 서비스 품질에 좌절했다”며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믿으며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로 약속했다”고 회사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헤이븐은 사업 초기엔 120만 명에 달하는 3사의 회사 직원과 이들의 부양가족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향후 일반에게도 서비스를 개방할 계획이다.

가완디는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인도 태생 미국 이민자로,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의사다. 그는 스탠퍼드대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윤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하버드 의대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하버드 보건대에서 공중보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하버드 의과대학과 보건대학 교수,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에서 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헤이븐의 CEO를 맡기로 한 뒤 가족과 지인들에게 메일을 보내 교수직과 의사직을 유지할 것이라고 알렸다.

그는 《뉴요커》 등에 글을 기고해 왔다. 또 《나는 고발한다, 현대의학을》 《체크! 체크리스트》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일할 것인가》 등 네 권의 책을 통해 더 나은 의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대해 꾸준히 썼다. 최고의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루이스 토머스상 등을 받았고,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이 주목한 것도 가완디의 이 같은 면모다. 베이조스 CEO는 “(의료 시스템을 개혁하고 의료 서비스를 개선하는) 일의 난이도를 고려할 때 전문가의 지식, 초심자의 마음가짐, 장기 비전 등 3박자를 다 갖춰야 성공을 바라볼 수 있다”며 “가완디는 이 세 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파괴적 혁신 보여줄까

미국 최대 건강보험사 유나이티드헬스가 지난달 기밀 정보 탈취 우려 등을 이유로 데이비드 윌리엄 스미스 전 임원이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막아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을 정도로 기존 의료보험업계가 헤이븐의 출현에 긴장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업계에선 가완디 CEO의 병원 경영 등 행정 경험 부족을 지적하며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의사 출신으로 헬스케어 기업 퍼머넌트메디컬그룹의 CEO를 지낸 로버트 펄 스탠퍼드대 교수는 포브스 기고를 통해 “그를 CEO로 앉힌 3개 기업의 대표들이 가완디 박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현재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를 통해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완디의 첫번째 책 《나는 고발한다, 현대의학을》이 나온 2007년부터 그와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눴다”며 “그가 명확한 비전을 갖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행동에 변화를 가져오는 능력에 감탄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가완디 CEO가 △불필요한 의료 행위 축소 △체크리스트 제안 △인간다운 죽음 보장 등에 초점을 맞춰 변화를 이뤄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를 들어 중년 이후 만성적인 연골판 파열을 치료하기 위해 행해지는 관절 수술, 연명치료 등의 의료 행위로 인해 연간 미국 의료비 지출 중 25%(7650억달러)가 낭비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고 펄 교수는 전했다. 헤이븐의 창업자 중 한 명인 버핏 회장도 종종 미국의 의료 비용에 대해 “미국 경제 경쟁력을 갉아먹는 기생충(tapeworm)”이라고 비난해왔다.

“의료진 손씻기부터 제대로”

구체적인 의료 시스템 개혁안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지만 가완디 CEO는 지름길이나 요행이 아닌, 정공법을 쓸 것이다. 그는 ‘제대로 일하는 것’에 대해 쓴 책 《어떻게 일할 것인가》에서 의료계뿐 아니라 위험과 책임이 따르는 어떤 시도를 성공시키는 데 필요한 핵심 요소 세 가지로 성실한 자세, 올바른 실천, 새롭게 생각하는 자세를 꼽고 있다.

가완디 CEO는 “의료 행위라고 하면 고독하면서 지적인 소임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며 “하지만 제대로 된 의료란 까다로운 진단을 내리는 것이라기보다 모두가 손씻기를 확실히 실천하는 것에 더 가깝다”고 강조했다.

그가 추진하는 의료 시스템 개혁은 실수를 줄이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세한 것까지 환자를 충분히 배려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완디 CEO는 “의료 시스템에 변화를 주고 기술, 계약, 정책 등 모든 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업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지속 가능하도록 장기적 관점에서 일을 해나갈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헤이븐이 기존 의료 서비스보다 비용을 30% 낮추고 그만큼 서비스 질을 향상시키면 중소기업도 이들이 제안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할 것이라고 펄 교수는 전망했다. 그렇게 되면 기존 병원과 보험사도 변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카메라에 밀린 필름 제조사 코닥, 차량 공유 서비스에 밀린 택시 회사 옐로캡 등처럼 파괴적 혁신에 밀려나지 않으려면 말이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