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고소득 대재산가에 대해 전방위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국세청은 7일 중견기업 사주 일가, 부동산 재벌 등 고소득 대재산가 95명을 대상으로 전국 동시 세무조사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사 대상은 대기업 총수 일가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검증 기회가 적었던 ‘숨은 대재산가’들이다. 김명준 국세청 조사국장은 “대기업과 달리 정기 순환조사와 기업 공시 의무에서 벗어나 있는 등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점을 악용해 대기업 사주 일가의 탈세 수법을 모방한 사례가 많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A법인은 사주가 사용하지 않은 판매·관리비를 법인 비용으로 처리하는 수법으로 자금을 빼내 자녀 유학비 등에 썼다가 적발됐다. 가족 휴양시설을 회사 연수원 명목으로 사들이거나 직원이 아닌 친인척·자녀 등에게 인건비를 지급한 사주도 과세당국의 감시망에 포착됐다. 매출거래 과정에서 유령 법인을 끼워 넣고 통행세를 받거나 위장 계열사와 거래하면서 과다 비용을 주는 등 일부 얌체 대기업의 수법을 그대로 모방한 사례도 있었다.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편법 증여 혐의도 다수 포착됐다. 한 사주는 중학교·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 명의로 결손법인을 사들인 뒤 이 법인에 자신이 소유한 고가의 부동산을 증여했다. 결손법인이던 손자의 법인은 주식 가치가 급등했고 고스란히 손자들의 경영권 승계 자금이 됐다.

이번 조사 대상 95명의 재산은 총 12조6000억원 규모다. 1인당 평균 1330억원이다. 재산 유형별로는 주식이 1040억원, 부동산이 230억원이었다. 나머지는 이자·배당 등 금융자산으로 추정됐다. 재산 100억~300억원이 41명으로 가장 많았고 5000억원이 넘는 대재산가도 7명으로 집계됐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31명으로 가장 많았다. 건설업(25명), 도매업(13명), 부동산 관련업(10명), 병원 등 의료업(3명) 등이 뒤를 이었다.

국세청은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 기업 사주의 횡령·배임 등 중대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 등 유관기관에 통보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