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소외株에 기회…발굴해서 보석 만들어야"
많은 투자자들이 주가가 오르는 종목을 쫓아 샀다가 내릴 땐 겁을 먹고 팔아서 손실을 본다. ‘싸게 사서 적정가치에 판다’는 가치투자 원칙과 어긋나는 행보다. 가치투자를 전문으로 한다는 펀드매니저들도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내재가치 분석에 실패해 저평가 여부를 잘못 판단하거나, 싸게 샀지만 시간이 한참 흘러도 주가가 오르지 않는 ‘덫’에 걸리기도 한다.

정용현 KB자산운용 밸류운용1팀장(37)은 적정가치보다 현저히 저평가된 종목 가운데 성장성 높은 종목을 골라 투자하는 ‘신(新) 가치투자’로 운용업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다. 정 팀장은 ‘KB 중소형주 포커스 펀드’와 ‘KB 퇴직연금 배당40 펀드’를 맡아 운용하고 있다.

“주도주보다 소외주”

"시장 소외株에 기회…발굴해서 보석 만들어야"
정 팀장은 KB자산운용 간판 펀드매니저인 최웅필 밸류운용본부장의 ‘수제자’로 불린다. 2007년 12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공채 1기로 운용업계에 들어온 정 팀장은 당시 한국밸류운용에 있었던 최 본부장을 직속 상사로 만났다. 두 사람은 2009년 11월 KB자산운용으로 함께 자리를 옮겨 10년 넘게 펀드 운용을 하고 있다.

‘KB 중소형주 포커스 펀드’는 국내 증시가 급락한 지난해 손실률을 2.09%로 방어하며 국내 중소형주 펀드 53개 중 1위 성적을 거뒀다. 올 들어서는 7.21%(지난달 28일 기준)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정 팀장은 산업재 등 중후장대 업종의 기업보단 ‘몸집이 가벼운’ 기업을 선호한다. 게임과 소프트웨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많은 양의 투하자본을 필요로 하는 기업은 현금 흐름이 안정적이지 않아 배당 가능 이익이 늘기 어렵다”며 “기업의 투자 시점이 산업 사이클과 잘못 들어맞을 경우 큰 타격을 받는 점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그는 증권사 연구원들이 보고서를 쓰지 않고 다른 펀드 매니저들도 잘 들여다보지 않는 소외주를 눈여겨본다. 지난해 4배 이상 상승하기 전까지 수년간 주가가 바닥을 긴 휠라코리아를 2017년 집중 편입한 게 대표적 사례다.

휠라코리아는 골프용품 브랜드 ‘타이틀리스트’를 보유한 회사 아큐시네트를 2011년 인수했다. 아큐시네트가 비상장사여서 순이익 분석에 어려움이 컸다. 증권사 연구원들은 이 종목 분석을 꺼렸다. 정 팀장은 “타이틀리스트의 브랜드파워 등을 고려할 때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해 사들이기 시작했다”며 “아큐시네트 상장 이후 회계적 불확실성이 줄고 브랜드 구조조정 후 본업의 경쟁력이 부각되면서 주가가 크게 올랐다”고 말했다.

주력 게임이 ‘서머너즈 워’ 하나뿐이라는 점 때문에 저평가받다가 2017년 하반기부터 급등한 컴투스를 일찍 알아본 것도 펀드 성과에 기여했다. 그는 “그간 많은 국내 모바일 게임이 오랫동안 수익을 내지 못하고 단명했기 때문에 ‘원 게임 리스크’ 우려가 높았지만, 서머너즈 워는 국내보다 해외 비중이 높았고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전역에서 매출을 내고 있었기에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초점은 리스크 관리에 둬야”

최근엔 일부 건설주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주택경기가 불황이라는 이유로 건설주 전반이 저평가받고 있어서다. 그는 “업황이 안 좋아도 이기는 회사는 언제나 존재한다”며 “기업의 재무구조와 수주잔액 등을 분석해보면 불황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데 저평가받는 회사가 눈에 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18일 기준 ‘KB 중소형주 포커스 펀드’ 포트폴리오에는 HDC현대산업개발(3.20%)이 편입 비중 상위 7위에 올라 있다.

휠라코리아 등 글로벌 확장성이 높은 기업과 게임·인터넷·엔터테인먼트 등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앞서는 기업들에는 여전히 주목하고 있다. 다만 엔터주에 대해선 고민이 많다. 그는 “아티스트의 경쟁력이 높고 유튜브 플랫폼을 토대로 산업이 구조적 성장기를 맞았다”면서도 “적정가격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다는 우려가 있어 시장 변동성이 높아질 때 낙폭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투자 전략에 대해선 “1월 반등장에 현혹되지 말고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속도 조절에 들어가면서 글로벌 유동성이 다시 신흥국으로 오고 대형주 중심으로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실적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시장과 관계없이 이익을 안정적으로 내는 종목을 얼마나 잘 선별하느냐가 올해 투자 성과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