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한국에서 일제 식민지 시대와 일본의 한국침략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한국인에겐 일제 침략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데요. 지난해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맞았던 일본에선 이토 히로부미가 근대 일본을 일군 대정치인으로 다시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이토 히로부미 등 19세기말 20세기 초 일본 유력 정치인들의 별장이 모여 있는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 오이소마치를 방문하는 일본인들도 크게 늘었다는 소식입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메이지 시대에 활동한 유명 정치인들의 별장이 모여 있어 ‘정계의 안방(政界の奥座敷)’이라고 불린 가나가와현 오이소마치 저택군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메이지 유신 150주년을 기념해 일부 저택들이 공개되면서 견학투어 참가신청이 예상 이상으로 몰렸다는 것입니다.

오이소마치는 일본 최초의 해수욕장이 마련된 곳으로 도쿄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풍광이 좋아 일찍부터 정계 거물들이 별장을 마련한 곳입니다. 20세기 초반 활동했던 인물을 중심으로 총 8명의 총리가 이곳에 별장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19세기말 20세기 초 일본 정계 거물들은 이곳 별장에 기거하면서 주요 정치적 결정을 내리고, 막후 협상을 진행하곤 했습니다. 이미 총리를 역임했던 원로 정치인들이 이곳에서 서로 간에 논의를 거쳐 차기 총리를 선정하고, 주요 국가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로정치’를 실행했던 무대이기도 합니다. ‘보는 눈’이 많은 도쿄를 떠나 “허심탄회하게 본심을 말할 수 있는 곳”이었다는 평판을 얻었다고 합니다. 매일 각 저택에서 연회가 열리면서 정보가 오갔다는 설명입니다.

이곳은 한동안 역사책 한구석에 기록된 채 잊혔지만 지난해 메이지 유신 150주년을 즈음해 다시금 일본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2017년 11월 국도1호변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 무쓰 무네미쓰(陸奥宗光), 사이온지 긴모치(西園寺公望) 등의 옛 저택을 ‘메이지 기념 오이소 저택원’으로 정비키로 했습니다. 이들 저택의 주인들은 일제의 한국 침략과 관련해서도 적잖은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2개월간 한정으로 주요 별장을 공개하는 견학투어가 실시됐는데 2만명이 넘게 참가했다고 합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토 히로부미의 옛 별장은 10년 이상 방치된 탓에 외벽의 페인트가 벗겨지고 실내에는 먼지가 쌓여 내부 관람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역대 총리 저택 대부분이 관동대지진으로 붕괴된 것을 뒤에 재건한 것으로 체계적인 조사나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 옛 정치인들의 별장군이 일단은 일시적으로 관광객에게 개방됐지만, 향후 상시적인 관광지역으로 개발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옛 저택들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도 잇따를 것으로 생각됩니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둔 시점에 한·일 관계가 역대 최악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얼어붙어 있습니다. 양국 정치권과 외교관간에 오가는 말도 더욱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악화된 한·일 관계를 순조롭게 매듭지을 돌파구가 잘 보이지 않는 가운데 양국에서 새삼 강조하는 역사의 모습도 그만큼 거리가 큰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