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란 변호사 "불합리한 관행·제도로 고통받는 환우들 돕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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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과 싸우며 변론 활동 이어가는 이경란 변호사
'간대성근경련'으로 12년째 투병
'삼수' 도전 끝에 법조인 꿈 이뤄
최근 블로그 등 통해 경험담 공유
"비슷한 처지 환우에 희망 줬으면"
'간대성근경련'으로 12년째 투병
'삼수' 도전 끝에 법조인 꿈 이뤄
최근 블로그 등 통해 경험담 공유
"비슷한 처지 환우에 희망 줬으면"
“교통사고로 희귀난치병을 얻고도 장애 인정을 받지 못해 보험회사와 소송하다 보니 법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변호사가 돼 불합리한 관행과 제도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서울 신림동의 한 카페에서 최근 만난 이경란 변호사(41·사진)는 투병 생활 중 법조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를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2014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한 뒤 세 번의 도전 끝에 2016년 변호사시험(변시)에 합격했다.
이 변호사는 2007년 겨울, 교통사고로 ‘간대성근경련(myoclonus)’이란 희귀병에 걸렸다. 미국에서는 영구 장애로 인정되는 병이지만 국내에선 워낙 희귀해 장애 등급도 받지 못했다. 근육경련과 통증이 심해 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하루 24시간 중 20여 시간을 누워 있어야 한다. 10년 넘게 복용한 진통제의 부작용과 합병증으로 소화 기능도 떨어져 164㎝ 키에 체중은 겨우 40㎏이다.
변호사 도전 과정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로스쿨 입학에 필수인 법학적성시험을 칠 땐 주최 측에 요청해 침대가 있는 고사장에서 시험을 봤다. 서강대 로스쿨에 합격해 매일 ‘오늘도 버티자’고 되뇌며 등교했지만 강의를 듣다가 수차례 실신하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교수님과 학생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졸업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심 당시 서강대 로스쿨 교수(현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위원)는 1주일에 두 번 점심을 사주며 그를 챙겼다. 동기와 후배들은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을 만들어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달려와줬다.
자리에 앉아 있기도 힘들어 누운 채로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변시를 준비했다. 두꺼운 법학 교과서를 낱장으로 찢어서 들고 다니며 공부했다. 하지만 첫 번째 시험에선 답안 작성 프로그램 오류로, 두 번째 시험에선 커트라인 근처 점수를 받아 떨어졌다. 세 번째 원서를 제출했을 땐 법무부에서 각서 한 장을 내밀었다. 고사장에서 의식을 잃고 일정 시간이 지날 경우 시험을 중단하고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할 것에 동의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변호사는 “죽어도 시험장에서 죽어야겠다는 각오로 각서에 서명했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롤모델’이 되고 싶다고 했다. 팔다리 경련으로 앉아서 타자 치는 것도 힘들지만 얼마 전부터 온라인 카페와 블로그에 본인의 경험담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직접 법정에 출석해 변론활동도 하고 있다. 그는 “비슷한 처지의 어린 학생들이 내 경험담을 읽고 꿈을 품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서울 신림동의 한 카페에서 최근 만난 이경란 변호사(41·사진)는 투병 생활 중 법조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를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2014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한 뒤 세 번의 도전 끝에 2016년 변호사시험(변시)에 합격했다.
이 변호사는 2007년 겨울, 교통사고로 ‘간대성근경련(myoclonus)’이란 희귀병에 걸렸다. 미국에서는 영구 장애로 인정되는 병이지만 국내에선 워낙 희귀해 장애 등급도 받지 못했다. 근육경련과 통증이 심해 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하루 24시간 중 20여 시간을 누워 있어야 한다. 10년 넘게 복용한 진통제의 부작용과 합병증으로 소화 기능도 떨어져 164㎝ 키에 체중은 겨우 40㎏이다.
변호사 도전 과정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로스쿨 입학에 필수인 법학적성시험을 칠 땐 주최 측에 요청해 침대가 있는 고사장에서 시험을 봤다. 서강대 로스쿨에 합격해 매일 ‘오늘도 버티자’고 되뇌며 등교했지만 강의를 듣다가 수차례 실신하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교수님과 학생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졸업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심 당시 서강대 로스쿨 교수(현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위원)는 1주일에 두 번 점심을 사주며 그를 챙겼다. 동기와 후배들은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을 만들어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달려와줬다.
자리에 앉아 있기도 힘들어 누운 채로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변시를 준비했다. 두꺼운 법학 교과서를 낱장으로 찢어서 들고 다니며 공부했다. 하지만 첫 번째 시험에선 답안 작성 프로그램 오류로, 두 번째 시험에선 커트라인 근처 점수를 받아 떨어졌다. 세 번째 원서를 제출했을 땐 법무부에서 각서 한 장을 내밀었다. 고사장에서 의식을 잃고 일정 시간이 지날 경우 시험을 중단하고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할 것에 동의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변호사는 “죽어도 시험장에서 죽어야겠다는 각오로 각서에 서명했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롤모델’이 되고 싶다고 했다. 팔다리 경련으로 앉아서 타자 치는 것도 힘들지만 얼마 전부터 온라인 카페와 블로그에 본인의 경험담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직접 법정에 출석해 변론활동도 하고 있다. 그는 “비슷한 처지의 어린 학생들이 내 경험담을 읽고 꿈을 품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