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린은 세종대왕을 포함해 한국사의 주요 인물들을 평했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종대왕상. /한경DB
브린은 세종대왕을 포함해 한국사의 주요 인물들을 평했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종대왕상. /한경DB
때론 이방인의 시선으로 우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애정 어린 시선을 가진 이방인이라면 더욱 제격이다. 1982년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후 더타임스와 가디언, 워싱턴타임스 등의 서울특파원으로 일한 영국인 마이클 브린이 그런 경우다. 36년째 서울에 살고 있는 그는 한국의 유력 인사들은 물론 김일성 북한 주석도 생전에 만났을 정도로 남북한 모두에 정통한 한반도 전문가다.

《한국, 한국인》은 그가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두루 훑으며 미래까지 전망한 책이다. 한국의 정치·사회·경제는 물론 역사, 종교, 생활습관, 문화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한국인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분석한다. 아무리 한국에 오래 살았다고 하지만 외국인이 참 별걸 다 안다 싶을 정도다. 마치 한반도를 공중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산과 국립공원, 시골, 비무장지대 등의 풍경과 역사를 들려주다 도시로 넘어와서는 서울역 인근 염천교 구두거리의 낡은 상가에 카페를 낸 아내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서 지금은 낡고 퇴락한 구두가게들이 1950년대엔 이승만 대통령이 외빈들에게 한국의 발전상을 본보기로 보여주던 자랑거리였다고 설명한다.

[책마을] 이방인이 바라본 세종…"워싱턴·제퍼슨·링컨 합친 인물"
그는 망원경과 현미경을 양손에 든 것처럼 한국과 한국인의 역사와 현재를 원경과 근경으로 교차하며 보여준다. 종교 이야기는 불교, 유교, 도교, 천주교, 기독교 등 각 종교가 어떻게 전래됐고 어떤 흐름을 거쳐왔는지 해박하게 들려준다. 그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한국에서 국가에 의한 반종교적 편협성을 보여준 유일한 사례는 근대화를 명분으로 한 무속신앙 말살정책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공격적인 민족주의가 아니라고 옹호한다. 그는 “남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민족주의는 박애적이고 때가 오면 세계에 혜택을 줄 수 있는 민족주의”라며 백범 김구의 자서전을 인용한다. 백범은 “우리 민족과 인류 전체가 풍요 속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일을 하는 것”을 제안했다.

독도 문제와 관련한 조언도 있다. 저자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전에 독도가 일본에 편입됐다는 일본의 주장은 법을 빙자한 사기라고 꼬집는다. 일본은 이미 1905년 조선 정부에 고문들을 파견해 지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1945년 일본이 포기한 권리의 범주 내에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사를 두루 훑으며 인물평도 곁들인다. 세종대왕에 대해 저자는 “워싱턴, 제퍼슨, 링컨이 하나로 합쳐진 것과 같은 인물”이라며 “한글 창제는 구텐베르크보다 앞서 대량인쇄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킬러앱’이었으나 유감스럽게도 성리학자들이 한글이 널리 쓰이는 걸 막았다”고 아쉬워한다.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에 대해서는 “세심하게 계획됐지만 리더십이 부족했다”며 “대부분의 지도자가 시위 첫날에 체포됐고 한국인들의 바람과 달리 해외 열강의 호응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브린은 가난했던 한국이 해방 이후 이룬 성취를 세 가지 기적으로 표현한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 발전, 짧은 기간에 이룬 민주주의 발전, 문화 한류다. 그는 이런 기적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북한과의 경쟁을 꼽는다. 자유민주주의 정치 이념과 자본주의 경제 이념을 선택한 대한민국은 인민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채택한 북한과의 대결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생존이 보장됐다. 그래서 절박했고, 뛸 수밖에 없었다는 것. 브린은 “간단히 말해서 친미로 나아간 남한은 구원을 받았고 친소를 표방한 북한은 쇠락했다”며 “이제 세계는 북한도 그 뒤를 따르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애초 세 번째 기적이 남북한의 통일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그는 “한국의 세계무대 도착을 완결짓는 세 번째 기적은 남한의 문화적 표현이 세계인에게 익숙해질 정도로 인식되고 인정받는 것”이라며 K팝과 한국 영화, 드라마, 문학 등의 글로벌화 추세로 미뤄 그 시점이 머지않았다고 전망한다.

브린은 ‘민심’이라는 이름으로 표출되는 국민 정서가 법과 제도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말이 거리 시위나 온라인 항의에 의해 의사 결정이 이뤄진다는 의미가 아니며, 안정된 민주주의는 대의제도와 법치에 기반을 둔다는 것을 이해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 브린은 “현 시점의 지지도를 생각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형태의 민주주의에 강력하게 맞설 만한 위치에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