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송파구에 사무실을 연 김모 변리사가 11월에 벌어들인 돈은 150만원이었다. 최저임금을 받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정부기관에서 발주한 4개월짜리 지식재산권 컨설팅 프로젝트(월 400만원)와 단기 특허 등 출원 일감 두 건(건당 150만원)으로 7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여기서 사무실 비용(200만원)과 여직원 월급(200만원)을 제하고 나머지를 동업하는 후배 변리사와 나눠 가졌다는 설명이다. 김 변리사는 “새벽까지 일하는 날이 많고 주말 출근도 밥먹듯이 하는데도 수입이 이 정도”라며 “3년만 채워보자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연봉 킹' 변리사는 옛말…月 150만원 벌기도
‘연봉 5억원’은 잘못 알려진 내용

고소득 전문직의 상징이던 변리사들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23일 입수한 대한변리사회 자료(지난 3월 기준)에 따르면 몸값이 가장 비싼 10~20년차 변리사의 평균 연봉은 9600만원으로 나타났다. 퇴직금이 포함된 금액임을 고려하면 비슷한 연차의 대기업 간부에 미치지 못한다. 전체 변리사 평균 연봉은 8600만원이었다.

이 같은 변리사회 자료는 변리사의 연간 수입이 5억원에 이른다는 보도가 잇따랐던 2013~2014년과 차이가 크다. 당시 데이터는 ‘법인 수입’이 ‘개인 수입’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었지만 이를 고려해도 수입이 계속 줄었다고 변리사들은 입을 모은다.

변리사의 주수입인 특허 출원 대행수수료는 건당 평균 115만2000원으로 조사됐다. 상표는 17만6000원, 디자인은 25만9000원이면 출원이 가능하다. 특허 수수료는 10년째 제자리다. 최근 2~3년 사이엔 오히려 가격이 내려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원형 변리사회 부회장은 “저가 수주 경쟁으로 특허 한 건에 50만원, 70만원씩 받는 덤핑 수주 사례가 늘고 있다”고 털어놨다.

시험 출신 변리사는 ‘흙수저’

업계가 어려워진 것은 특허시장이 예전만 못해서다. 특허청에 접수된 특허는 2015년(21만3694건)을 정점으로 매년 줄고 있다. 2016년 20만8830건, 2017년 20만4775건 등으로 감소세다. 올해 9월까지 접수된 특허는 14만2382건이었다. 접수 건수를 기준으로 특허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3년 이후 처음으로 20만 건을 밑돌 전망이다. 돈이 되는 대기업 특허 출원 건수의 하락세는 한층 더 가파르다. 2015년 4만2649건에서 지난해 3만3326건으로 줄었다.

변리사를 고용해 특허 관련 소송을 대리하는 대형 로펌들도 사정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로펌들은 대기업의 특허분쟁을 대리해주는데 특허 시장이 침체되면서 기업 간 특허분쟁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 기업을 대행해 한국에 특허를 출원하는 비즈니스 역시 부진하다.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에 배정했던 출원 예산을 중국 등 다른 아시아권 국가로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변리사들의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6월 기준으로 특허청에 등록된 변리사는 9421명에 달한다. 매년 400~500명씩 늘고 있다. 국내에서 변리사가 되는 방법은 세 가지다. 변호사가 연수를 거쳐 자격을 취득하거나, 변리사 시험(매년 200명 선발)을 통과해야 한다. 특허청에서 오래 근무한 공무원도 대부분의 변리사 시험을 면제받고 변리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변호사들이 실무연수를 받고 변리사 자격을 취득하는 것으로 제도가 바뀐 2017년 직전인 2016년엔 791명의 변호사가 무더기로 변리사 자격을 취득했다. 2016년까진 변호사는 연수 없이도 원하면 변리사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한 변리사는 “변호사는 다른 일이 있고 특허청 출신 변리사도 인맥 때문에 기업 등의 수요가 상당하다”며 “이런 점을 고려하면 선발시험을 거친 사람들은 흙수저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법 내년 시행되지만

부정경쟁방지법과 특허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내년 6월부터 다른 회사의 특허를 침해하면 피해액의 최대 세 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물어내야 한다. 특허 관리와 소송을 담당하는 전문가 집단의 몫이 늘어날 수 있는 호재지만 변리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변리사는 특허소송을 진행할 수 없다. 특허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관련 민사소송은 특허법원이 아닌 일반법원이 담당한다. 일반법원에서 이뤄지는 소송업무는 변호사만 맡을 수 있다. 변리사법 8조엔 “변리사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의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특허법원에서 이뤄지는 소송만 변리사가 진행하도록 법원이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개정된 특허법의 최대 수혜자가 변호사라는 반응이 나온다. 특허가 중요해진 만큼, 특허 출원 대리인인 변리사 수임료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으나 변호사에 비해 낙수효과가 작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송형석/윤희은/박종서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