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썰렁한 과기부 '블록체인 진흥주간'…"왜 산자부처럼 못 싸우나" 쓴소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 ‘2018 블록체인 진흥주간’ 행사 첫날인 26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 행사장.

컨퍼런스장 곳곳에 빈자리가 보였다. 부대행사로 마련한 채용상담회는 더 심했다. 블록체인 분야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국내 유망기업들이 부스를 차렸지만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블록체인 기업 관계자는 “과기부 요청으로 채용상담 용지 500장을 뽑아왔는데 종일 찾아온 건 딱 한 명”이라고 털어놓았다.

‘블록체인을 열어라!’ 주제의 과기정통부 주최 블록체인 진흥주간은 30일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첫날부터 너무 썰렁했다. “국민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정부와 민간의 역량을 결집하기 위한 행사”라는 과기정통부 설명이 무색할 정도였다.

정부가 주도한 블록체인 행사가 왜 이처럼 시장과 업계의 외면을 받은 것일까.

라인업은 좋았다. 과기정통부 주최에 블록체인 시범사업 예산 운영을 총괄하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등이 주관했다. SK텔레콤, LG CNS, KT 등 대기업을 비롯해 블로코 아이콘루프 코인플러그 글로스퍼 등이 후원사로 참여했다. 그동안 민간에서 열린 상당수 블록체인 행사가 인파로 붐볐다. 정부 주최에다 참여업체 면면도 뛰어난 이번 행사가 보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을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행사장의 상당수 부스 관계자는 하릴없이 앉아 있었다. 1~2명씩 관람객이 들렀다가 상담은 받지 않고 죽 둘러보고 그대로 나가는 패턴이 반복됐다. 채용상담을 맡은 업체 관계자가 사람이 아예 없는 탓에 휴대폰 게임을 하며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과기정통부 요청을 받아 채용상담회에 참여했다는 업체는 “다른 블록체인 행사에선 늘 관심을 많이 받았는데 오늘 채용상담은 겨우 3~4건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손쉽게 꼽을 수 있는 흥행 실패의 이유는 가상화폐(암호화폐) 시장 상황. 비트코인 가격은 이달 들어 300만원 가까이 떨어졌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 폭락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추정이다.
[현장+] 썰렁한 과기부 '블록체인 진흥주간'…"왜 산자부처럼 못 싸우나" 쓴소리
업계 반응은 좀 달랐다. 암호화폐 하락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고 했다. 도리어 과기정통부의 ‘반쪽짜리 정책’이 시장과 업계의 반감을 산 측면이 크다고 짚었다. 블록체인을 진흥한다면서 암호화폐와 철저히 분리하고, 생태계 형성(퍼블릭 블록체인)과는 거리가 있는 프라이빗 체인에만 관심을 둔 탓이라는 설명이다.

다른 정부부처를 보며 이런 서운함은 더 커졌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 공개 여부를 놓고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가 맞선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산자부는 산업 보호를 이유로 공개하면 안 된다고 했고, 고용부는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해서라도 공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산자부도 고용부도 각각의 입장에서 해야 할 역할을 한 것 아니냐. 과기부와는 비교된다”고 했다. 규제기관인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이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과기정통부가 이들과 때로 각을 세워가며 블록체인 산업 진흥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는 모습이 안 보인다는 얘기다.

과기정통부가 내놓은 ‘블록체인 기술 발전전략’도 뜯어보면 생색내기 수준이란 지적까지 나온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철저히 배제했다. 시범사업에 투입한 예산 역시 100억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큰 시범사업 분야만 6개라 개별 사업지원은 몇십억원 수준이다. “국가 차원 예산이라기엔 너무 적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과기정통부는 최근 업계 이슈인 암호화폐 공개(ICO) 허용,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 등의 논의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때문에 과기정통부가 의지를 갖고 업계 입장을 정확히 전달하기보다는 ‘몸 사리기’에 급급하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금융위와 과기정통부 실무자가 참석한 블록체인 관련 국회 토론회에서 정병국 의원(바른미래당)은 이같이 질타했다. “금융위가 부정적 입장인 것은 일면 이해한다. 하지만 과기부는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위해 이견을 가진 다른 정부부처를 설득해야 할 과기부가 이렇게 소극적이면 안 된다.” 과기정통부에게 여전히 아쉬운 대목이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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