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회계사인 내가 지난 9월21일자로 세종문화회관 사장에 임명됐다. 오랜 기간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이곳의 수장을 맡으면서 많은 이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았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공인회계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숫자에 몰두하는 이미지로 나오다 보니 공연장 사장으로는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예술과 회계는 같이 놓고 보면 안 어울릴 수도 있다. 예술은 새로운 생각과 느낌을 어떤 형식을 빌려 독창적으로 표현하지만, 회계는 이미 벌어진 사실을 보편적으로 정리한다. 다시 말해 회계 자료는 객관적이고 비교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나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창작한다면 회계를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예술과 회계는 정말 어울릴 수 없는 것일까. 다소 억지스러울지 모르지만 예술과 회계도 공통점이 있다.

우선은 예술과 회계 모두 ‘언어’라는 점이다. 화가가 그리는 그림이나 예술가가 무대에서 펼치는 동작은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며, 이를 통해 예술 소비자는 감동을 받고 정서를 순화한다. 회계가 감동을 주거나 정서를 순화해주진 않지만 회계는 의사전달 수단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조직의 회계 자료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재무제표로서 훨씬 더 많은 것을 파악하게끔 한다. 내용과 형식은 다르지만 둘 다 의사전달 수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회계를 통해 작성되는 대표적인 것이 재무제표다. 그중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재무상태표(balance sheet)다. 여기서 balance는 ‘잔액’이라는 뜻과 함께 ‘균형’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회계 자료는 언제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데, 예술에서도 균형 과 조화는 중요한 요소다. 때론 비대칭이나 여백이 더 강조되곤 하지만 이 또한 작품 안에서 나름대로의 조화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변화’다. 예술에선 새로운 장르에 대한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그중 일부는 일반화돼 계속 나아간다. 뮤지컬과 비디오 아트가 등장했고, 장르 간 다양한 크로스오버가 시도되고 있다. 새롭고 다양한 시도로 인해 예술 분야는 서서히 변화해 가고 있다. 전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회계도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현행원가, 환경회계, 인적자원회계 등 기존 회계제도와 개념을 수정하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기준으로 정착된다.

이렇듯 예술과 회계도 공통의 연결점이 있다. 문화예술분야에서 회계를 비롯한 경영컨설팅을 오랫동안 해온 만큼 공연장 사장과 공인회계사의 조합에 더 큰 기대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