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시민권은 미국 시민권자는 물론 불법체류자나 일시 체류자의 자녀라도, 미국에서 태어나기만하면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이른바 ‘원정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도 미국 시민권자가 되는 이유다. 근거는 미 수정헌법 14조다. ‘미국에서 태어거나 귀화해 그 것의(미국의) 사법권 대상이 되는 모든 사람은 미국 시민 겸 거주하는 주(州)의 주민이 된다.(All persons born or naturalized in the United States, and subject to the jurisdiction thereof, are citizens of the United States and of the State wherein they reside.)’는 조항이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문구가 ‘미국의 사법권 대상이 되는(subject to the jurisdiction thereof)’이란 다섯 단어다.
미국 내 일부 보수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이 문구가 미국 시민과 합법적인 영주권자에게만 적용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었다. 불법 이민자나 일시 체류자 등의 자녀에게는 출생시민권을 부여해선 안된다는 해석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이날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연방대법원은 ‘미국의 사법권 대상이 되는’이란 수정헌법 14조 문구가 미국 내 불법체류자에게 적용되는지에 대해선 판결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펜스 대통령의 발언에 비춰볼 때,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출생시민권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이와 달리 출생시민권을 인정해왔다. ‘미국의 사법권 대상이 되는’이란 문구와 관련해서도 ‘외교관 자녀’들만 출생시민권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미국에 주재하는 다른 나라 외교관은 면책특권을 적용받기 때문에 미국의 사법권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헌법상 권리인 출생시민권을 행정명령으로 폐지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상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공화당 소속)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행정명령으로 없앨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로라 도나휴 조지타운 헌법센터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상은)기본적으로 대통령이 헌법 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헌법 수정을 위해서는 상·하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 찬성과 미국 모든 주의 4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출생시민권 폐지 발언에 대해 공화당 지지층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이민 이슈를 활용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해석했다.
그럼에도 출생시민권 이슈는 미국 사회에 잠복한 민감한 이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미국에서 태어난 불법체류자 자녀는 27만5000으로 그 해 출생아(약 400만명)의 7% 수준이었다. 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미국 시민이 되며, 일정한 나이가 되면 부모나 형제를 미국으로 초청할 수도 있다. 미국 내에서 출생시민권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된 배경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인터넷 매체 악스오스 인터뷰에서 출생시민권을 폐지하는 행정명령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어떤 사람이 입국해서 아기를 낳으면, 그 아이는 본질적으로 미국의 모든 혜택을 누리는 시민이 되는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다”며 “이는 말도 안된다. 이제 끝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말은 항상 들어왔다”며 “(하지만)그 것 아나. (헌법 개정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이 출생시민권을 부여하는 유일한 국가라는 주장은 잘못 됐다고 지적했다. 이민 감소를 지지하는 ‘넘버스 USA’ 자료에 따르면 33개 국가가 자국 내 출생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한다며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많은 중남미 국가들이 여기에 포함된다고 전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