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안정세를 유지하던 물가는 폭염이 시작된 7월부터 뛰어오르더니 최근에는 국제유가 상승까지 가세하며 상승폭을 확대하고 있다. 6월만 해도 전월 대비 -0.6%였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7월 0.2%, 8월 0.5%에 이어 9월엔 0.7% 급등했다. 급격한 물가 오름세는 원가 상승과 구매력 감소로 이어져 경제에는 치명적이다. 경기침체 와중에 물가까지 지속적으로 뛸 경우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 상승)이라는 최악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최근 급등의 주범은 국제유가다. 8월까지만 해도 배럴당 70달러 선에 머물던 유가는 미국의 이란 제재로 슬금슬금 오르더니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사망 사건으로 미국과 사우디 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최근엔 두바이유, 브렌트유가 모두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섰다. WTI(서부텍사스원유)는 아직 배럴당 70달러대지만 급등세를 타기는 마찬가지다.

유가 상승은 수입물가 앙등으로 이어진다. 9월 수입물가 지수는 90.69로 한 달 전보다 1.5% 올랐다. 3년10개월 만에 최고치다. 폭염으로 치솟은 ‘장바구니 물가’까지 가세해 생활물가 전반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달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2% 올라 상승폭이 전달의 두 배 수준으로 확대됐다. 석유류 가격은 전년 대비 10.7%, 농산물 가격은 12.0% 올랐다.

이 와중에 지역별 대중교통 요금도 줄줄이 인상될 예정이어서 ‘체감 물가’는 더욱 가파르게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카드를 서둘러 꺼낸 것은 최근 물가 상승 요인이 안팎으로 겹치면서 국민들이 느끼는 물가 수준이 실제로는 훨씬 심각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북반구의 겨울이 다가오면서 당분간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실물 경제가 급속히 위축되는 와중에 물가 급등까지 이어진다면 경기침체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유가가 배럴당 평균 80달러가 되면 투자는 7.56%, 국내총생산은 0.96% 줄어든다고 예상한 바 있다. 여기에 미국발(發) 금리 인상이 지속되면 자칫 유가와 물가, 금리가 동시에 오르는 ‘신 3고(高)’ 시대가 닥칠지도 모른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한 방송에 출연해 “정부 경제정책이 C학점이라는 지적에 동의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더 늦기 전에 기업 투자를 장려하고 시장의 자율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 궤도를 수정해야 할 것이다. 경제가 망가지면 분배도, 정의도, 골고루 잘사는 나라도 모두 공염불이 된다. 지금 우리 경제는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처지다. 설마설마하다가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